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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저편 304…명멸(明滅)(10)

입력 | 2003-04-29 18:53:00


열에 들뜬 아들은 조잘조잘 떠들고는 휴우 하고 한숨을 크게 내쉬고 눈을 감더니 금방 잠이 들었다 나는 아들의 심장에 손바닥을 살짝 대어보았다 조그만 몸속에서 심장이 거의 한계에 가깝도록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툭탁! 툭탁! 툭탁! 툭탁!

1941년 4월 13일 일소 중립조약 체결

대일본제국 정부 및 소비에트연방 정부는 양국간에 체결된 중립조약의 정신에 입각하여 양국간의 평화 및 우호 관계를 보장하기 위해 대일본제국은 몽골인민공화국 영토의 보존 및 불가침을 존중하고 소비에트연방은 만주제국 영토의 보존 및 불가침을 존중한다.

잡귀야 물러가라! 빨간 장군복을 입은 무당은 아들의 몸을 칼로 몇 번이나 두드리고는 멍석에 둘둘 말아 마당으로 옮겼다 멍석 위에 귀신을 물리친다는 북어를 올려놓고 삽으로 흙을 퍼서 끼얹었다 아이구 내 아들! 저 금쪽같은 아들한테! 이씨 집안을 이어갈 장남에게! 아이고! 이미 죽었으니 목숨을 빼앗아갈 수 없다고 신을 속이는 허장거리라는 설명은 들었지만 시체 다루듯 멍석에 둘둘 말아 흙까지 덮다니 너무 심하지 않은가! 무당은 날계란 세 개에 붓으로 뭐라뭐라 썼다 이신태 1933년 6월 8일 7세 대수대명(大壽大命) 아들의 이름과 생년월일 기원이었다 무당은 계란을 쥔 손을 높이 쳐들었다 퍽 하는 소리가 나면서 깨진 계란 노른자가 천천히 아들의 몸으로 흘러 떨어졌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장군님께 비나이다 아무쪼록 되살아나게 해 주십사고 무당은 중얼거렸는데 멍석에서 풀려나온 아들은 그저 공포를 숨쉬고 불안을 토하고 큐우 파아 큐우 파아 오후 5시에 시작된 우환굿은 다음날 오전 2시가 되었는데도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아들은 신음소리 하나 울음소리 하나 뱉지 않고 참았다 아이구 얼마나 아팠을꼬 어째 참았을꼬 아이고! 조상 거리가 한참 진행되는데 격렬하던 장구소리가 뚝 그쳤다 무당은 처녀귀신이 된 여동생의 말을 공수했다 다녀왔습니다 아이고 어머니 아이고 아버지 너가 우근이가 참말로 많이 컸데이 이 여자애가 내가 물에 빠져 죽은 날에 태어난 조카로구마 그 옆에 있는 여자애도 그렇고 하모 알고말고 가르쳐주지 않아도 다 안다 피 냄새가 나니까네 내가 흘린 피하고 똑같은 냄새가 신태야 만난 적도 얘기한 적도 없지만 내가 니 고모다 피 냄새 좀 맡아 보그라

글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