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시절에도 그렇게 일에만 몰두하더니, 결국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는구나….”
29일 저녁 서울 서초구 서초동 강남성모병원 영안실. 소주잔 앞에 붉은 얼굴로 모여 앉은 중견 법관들의 가슴 깊은 한숨소리가 곳곳에서 배어나왔다.
이들이 마주 앉은 자리는 박성수(朴省洙·사시 30회·사진) 변호사의 상가. 박 변호사는 28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39세의 젊은 나이에 과로로 쓰러져 숨졌다.
1991년 인천지법 판사로 법조계에 첫발을 들여놓은 박 변호사는 2001년 서울행정법원 판사를 끝으로 변호사 개업 때까지 근로자들의 산업재해 인정 범위를 넓히고 그 기준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법관 시절 그가 쓴 ‘업무상재해의 인정기준’이라는 논문은 지금도 산재 재판의 한 기준이 되고 있다.지인(知人)들은 그가 법관시절 항상 철거민이나 무주택자 등 소외되고 힘없는 ‘약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왔다고 입을 모은다. 박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시절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도 할머니와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인천지법 남부지원에 초임으로 지원했다.
그가 법관 생활을 접게 된 것도 ‘어른들을 좀 더 편하게 모시기 위해서’였다고 한다.박 변호사의 동기인 한 판사는 “어려운 길을 걷게 되더라도 무엇이 국민을 위하는 것인지 항상 고민하는 법관의 전형이었다”고 회고했다. 발인 30일 오전 9시. 02-590-2697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