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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음식]2세대 퓨전 레스토랑

입력 | 2003-05-01 17:27:00

케이터링 전문업체 '라퀴진'이 연 첫 레스토랑 '블루폰드'의 다이닝바. 일식을 기본으로 중국풍 식단을 가미했다. 담백하고 깔금한 맛의 소스가 특징. (위)세가지 소스를 곁들인 해산물 양상추쌈 (아래) 홈메이드 마요네즈 소스의 새우요리



2∼4월 서울 청담동, 신사동 일대 고급 레스토랑 거리에 속속 새로운 식당들이 문을 열었다. 비슷한 시기에 개장한 이 식당들은 식단이나 인테리어 등에서 ‘오리엔탈리즘’을 컨셉트로 삼고 있는 점도 같다. 식단은 한중일의 동북아 또는 태국 등의 동남아식, 인테리어는 나무 물 돌 등을 주로 사용한 자연주의를 지향하며 식기로는 젠 스타일 도자기, 놋쇠 그릇 등을 사용한다.

● ‘2세대 퓨전’ 개막

이 식당들은 인테리어, 소스, 식탁을 차리는 법 등에서 여러 문화가 한 데 섞이는 ‘퓨전( 융합)’ 양상을 보인다. 일본식 사시미에 중국 소스를 곁들이거나 인테리어는 중국식인데 식단은 한식인 경우처럼 융합의 방식은 다양하다. 그러나 일부 식당 주인들은 “퓨전 푸드로 분류되는 것이 싫다”고 말한다. 1997년 경 바로 이 동네를 중심으로 ‘퓨전 푸드’ 유행이 전국적으로 확산됐고 그 과정에서 ‘새롭긴 하지만 아무렇게나 섞은 국적 불명의 실험물’이라는 부정적인 인식도 생겨났기 때문이다.

식문화 전문가들은 “새로운 레스토랑들도 이질적인 두 개 이상의 요소가 섞인다는 의미에서 ‘퓨전’이긴 하지만 초기 퓨전과는 차별화되는 2세대”라고 말한다.

요리전문 사이트인 ‘쿠켄네트’ 이윤화 팀장은 “ ‘1세대 퓨전’ 식당 가운데 특히 실패작들은 여러 나라의 음식 재료나 조리 방식을 어설프게 섞었지만 ‘2세대 퓨전’은 융합은 하되 각 나라 음식 고유의 맛을 살리는데 주력하는 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음식의 ‘화학적 퓨전’을 시도하기보다는 소스나 서빙 방법, 음식 장식 등을 통해 물리적으로만 결합하는 것도 ‘2세대 퓨전’의 특징이다.

중국풍 인테리어에 한식,중식, 일식을 중심으로 다양한 전통. 퓨전요리를 선보이는 '청담 안'. 주변 식당들에 비해 푸짐한 음식량이 특징. (위)메로구이와 생사과 소주(아래) 바슈

‘라퀴진’의 박소현 실장은 이에 대해 “98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정통 이탈리아식, 중국식을 내세우는 식당들이 속속 생겨나는 등 ‘정통식’을 찾는 트렌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새로 생긴 식당 가운데 이북식 녹두지짐, 제주도산 갈치조림 등 전통 한정식 식단을 서구식 코스 요리 방식으로 서빙하는 ‘쁘띠 시즌스’(02-546-6782)나 4인의 태국인 요리사가 정통 태국 요리를 일본풍 식기에 담아 선보이는 ‘애프터 더 레인’(02-3446-9375) 등이 ‘물리적 퓨전’ 사례에 해당된다.

● 일식을 기본으로

대부분의 식당들이 칼로리가 낮은 일식을 다룬다.

△일본의 유명 레스토랑 컨설턴트 마샤 이와타테는 ‘블루폰드’(02-511-8652)의 메뉴로 일식과 중식을 섞은 깔끔한 퓨전 요리를 제안했다. ‘수란을 얹은 담백한 지라시 스시’(1만8000원)는 잘게 토막 낸 생선과 달걀을 버무려 먹는 담백한 회덮밥. 후식용 토마토 셔벗도 별미다.

△‘옌’(02-542-3186)은 시즌스, 뮤비 등의 주방장이었던 남경표씨가 낸 식당. 유자즙을 뿌려 상큼한 스페셜 포크 스튜(2만2000원) 등이 인기다. 점심 세트메뉴(2만5000원)에 포함된 광어 카르파초는 와사비 간장 소스 대신 바질소스를 곁들여 부드럽다.

△‘슈슈’(02-545-1999)는 일식과 서양식 레스토랑. 한식 중식도 가미됐다. 매일 경남 통영에서 올라오는 도다리를 이탈리아식 샐러드와 곁들여 먹거나(1만2000원), 바닷장어를 살짝 데쳐 간장 유자즙 식초 등으로 만든 소스에 찍어 먹는 메뉴가 인기다. 반찬으로 오이 피클 대신 살짝 언 동치미를 준다.

● 다국적 퓨전

디자이너 박지원씨가 모은 태국, 중국등의 인테리어 소품들이 가득한 레스토랑 '파크', 태국과중국의 전통 요리에 약간의 '퓨전푸드' 메뉴를 더했다. (위)커리크랩(아래)닷사이 단호박 삼겹살

△‘청담 안’(02-541-6381)에는 한식 중식 일식 서양식 담당 주방장이 따로 있다. 육회를 서양식 카나페처럼 집어먹기 쉽게 조리한 ‘바슈’(2만원), 사과 속을 파낸 뒤 소주를 담는 잔으로 쓰는 사과 소주 등이 인기. 중국식 앤티크 가구와 대형 산유화 화분, 높은 천장 등 대륙적인 느낌의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파크’(02-512-6333)는 태국과 중국식 메뉴를 선보인다. 디자이너 박지원씨가 태국인, 화교 요리사들을 거느리고 문을 열었다. 태국식 당면 버미셀리에 새우, 야채를 곁들인 샐러드 ‘얌 운 센’(1만8000원), 삼겹살찜과 단호박을 섞은 ‘닷사이 단호박 삼겹살’(2만3000원) 등이 인기 메뉴.

△홍콩에 본부를 둔 체인 레스토랑 ‘코카게’(02-3448-5100,1)에는 바다가재와 거위 간을 김과 함께 조리한 ‘랍스터 구즈리버’, 새끼돼지를 6시간 동안 구운 스페인식 요리 ‘서클링 피그’ 등이 있다. 자몽주스, 사케, 계란 흰자 등으로 만든 ‘코카티니’ 등 사케로 만든 칵테일이 다양하다.

△각각 프랑스, 중국, 일본음식과 디저트 요리를 전공한 일본 요리사 4명이 음식을 만드는 ‘타니’(02-3446-9982)도 나라별 음식 맛이 잘 살아나는 조리법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글=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사진=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인테리어 전문가 민경식 소장▼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파이낸스센터빌딩의 ‘강가’, ‘싱카이’, ‘이끼이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누들바 ‘호면당’, 정통 한식 레스토랑 ‘쁘띠 시즌스’, 동양식 퓨전 레스토랑 ‘파크’….

최근 몇 년 새 서울 광화문과 청담동 일대에 문을 열어 성업 중인 인도식, 중식, 일식, 태국식 등 오리엔탈 음식 전문점들이다. 이 식당들의 또다른 공통점은 모두 건축가 민경식 소장(사진)이 인테리어를 맡았다는 것.

“동양음식에 어울리는 동양식 인테리어는 나무 돌 물 등 자연친화적인 소재를 사용하고 프라이버시보다는 공존을 중시하는 겁니다.”

‘공존’은 대형 유리창을 통해 2층에 앉아 1층 사람들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하거나, 거울 또는 시폰 커튼 등으로 구획을 나눠 사람들과 함께 섞여 있는 느낌을 즐기게 하는데서 시작한다. 민 소장이 리노베이션 책임 건축사를 맡았던 서울파이낸스 센터 식당가의 경우 대부분의 식당 통로 부분에 광장풍의 실내 테라스가 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카페나 식당 모두 테이블 사이에 높은 칸막이를 치려고 안달이었죠. 남의 시선을 꺼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특히 작년 월드컵 개최 이후, 막힌 실내 대신 광장처럼 툭 터진 야외 식당을 더 선호한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민 소장이 최근 가장 관심을 갖는 인테리어 소재는 촘촘한 검은색 철망인 ‘와이어 메쉬’. 그 뒤에 거울을 달면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된다.

민 소장은 1977년 서울대 조경학과 재학 시절 친구들과 ‘젊은 연인들’을 불러 대학가요제 동상을 받은 인물. 뉴욕 C.C.M.P 건축사무소, 공간종합건축사 사무소 소장 등을 지낸 뒤 1997년 민경식건축사사무소를 냈다.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