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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어댑테이션'…'난초도둑'의 비밀은…

입력 | 2003-05-01 18:09:00



‘어댑테이션(Adaptation)’은 다음 장면을 예측하기 어려운 영화다.

독특하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이야기 가지들이 뻗어나간다. 황당하지만 난삽하지 않고, 심각한 척 하면서도 경쾌하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주목받았던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1999년)의 감독 스파이크 존즈와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우프만이 다시 손을 잡고 만든 작품.

작가 찰리 카우프만은 베스트셀러 각색 작업에 손대면서 곤경에 빠진 스스로를 영화의 모델로 삼았다. ‘존 말코비치 되기’로 천재 작가로 떠오른 찰리(니컬러스 케이지)는 소심한데다 극심한 자기 혐오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 그에게 베스트셀러 ‘난초 도둑’의 각색 작업이 주어진다. 뉴요커의 기자 수잔(메릴 스트립)이 쓴 ‘난초도둑’은 전설의 난초를 찾아 나선 탐험가 존 라로쉬 (크리스 쿠퍼)에 대한 책. 각색 작업을 하면서 찰리는 점점 자학적 절망감에 빠져들고, 설상가상으로 시나리오를 쓰겠다며 설치고 다니던 쌍둥이 동생 도널드(니컬러스 케이지)가 할리우드에서 촉망받는 작가가 되자 찰리는 신경쇠약 직전에 이른다. 견디다 못한 찰리는 동생 도널드에게 도움을 요청해 원작자인 수잔에게 접근한다.

‘어댑테이션’에는 여러 결의 이야기가 얽혀 있다. 열정적인 탐험가 존 라로쉬와 그가 가진 열정의 이유를 이해하고 싶은 기자 수잔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극심한 자기혐오에 허덕이던 작가가 스스로를 극복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 편의 영화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임과 동시에 실제와 허구가 어떻게 결합되는지도 보여준다. 이 복잡한 이야기들이 엉키지 않고 술술 풀려나간 것은 감독보다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우프만의 공으로 돌려야 할 듯하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이며 열정적인 사람을 경멸하면서도 동경하는 소심증 환자들에 대한 영화다. ‘유일한 열정은 다른 사람들의 열정의 이유를 이해하고 싶다는 것’ 밖에 없던 수잔은 존 라로쉬를 따라 ‘가질 수 없는 환상에 대한 동경’에 몸을 던지며 파국을 맞는다.


반면 초반에 “우리가 사는 세상처럼 갈등도 없고 사람이 크게 변하지도 않으면 도대체 어떻게 시나리오를 써야 하느냐”고 질문하던 찰리는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또다른 자아이기도 한 도널드와 화해한 뒤 “남들이 뭐라건, 내가 사랑했으면 그 사랑은 내 것”이라는 도널드의 말을 화두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찰리와 도널드 1인2역을 연기한 니컬러스 케이지는 두 배역의 상반된 성격을 빼어나게 연기했다. 메릴 스트립과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탄 크리스 쿠퍼 등 출중한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도 즐겁다. 18세이상 관람가. 8일 개봉.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