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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저편 306…명멸(明滅)(12)

입력 | 2003-05-01 18:47:00


1936∼41년, 일본의 전황은 패배로 기운다. 우철의 차녀가 사망, 삼녀 신자가 태어나고 이어 다른 여자의 몸에서 차남 신명, 또 다른 여자의 몸에서 삼남 신철이 태어난다. 아내 인혜와는 이혼. 한편 육상 경기에서는 줄곧 좋은 성적을 올렸으나, 1940년 도쿄올림픽은 중지. 그리고 장남 신태가 중병에 걸렸다.

아내는 복도의 하얀 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오늘부터 병원에서 먹고 자고 하겠습니다 아만 놔두고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미쳐버릴 낍니다 아를 살릴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내 가진 것 다 내주어도 상관없습니다 이 몸이 대신 앓을 수 있다면 언제든 대신하겠습니다 아이고!

어머니가 가게 일에 집안 일 딸들까지 보살피면서 한 달이 지났다 아내는 엽서로 아들의 병세를 알려주었는데 이틀 전에는 엽서가 아니라 편지가 왔다

신태 아버지에게

신태는 지금 아주 위독한 상태에 있습니다. 병의 원인은 물론 병명조차 알아내지 못하는 의학의 무력함과 자기 자식의 아픔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만 보는 어미의 무력함에 견딜 수가 없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은 진통제 모르핀을 맞은 탓인가, 의식이 분명한 때보다 잠꼬대를 하고 헛소리를 하는 때가 많아져, 이대로 의식이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곁에서 지켜보기가 두렵습니다.

당신은 잊고 있을 테지만, 6월8일은 신태의 여덟 번째 생일입니다. 신태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한 달이나 같이 먹고 자며 하면서도 옮지 않았으니, 전염병은 아닌 듯 싶습니다. 그 아이가 태어나면서 달고 나온 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회진 때 의사선생님이, 숨을 쉬고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언제 혼수 상태에 빠질지 모르니,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의식이 있는 동안에 만나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신과 부부가 된 지 올 3월로 11년이 되었지만 당신에게 무슨 부탁을 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부탁입니다. 6월8일 신태의 생일날 면회를 와주면 좋겠습니다. 만약 이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대로 저 세상으로 간다면 너무 불쌍합니다. 아무쪼록 저의 부탁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신태 에미로부터

글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