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공원 동물원에 마련된 늑대의 번식장. 사람이 나타나자 사랑을 나누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는지 늑대가 긴장한 모습으로 번식장을 돌아다니고 있다. -박주일기자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에 러브호텔이 있다. 대뜸 “풍광 좋은 대공원에 웬 러브호텔이냐”고 하겠지만 그건 분명 러브호텔이다. 일반적인 러브호텔과 다른 것은 투숙객이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라는 사실. 서울대공원은 토종 야생동물의 번식을 위해 2000년 동물원 북쪽 맨끝 유럽들소 사육장 옆에 10평짜리 객실 14개로 된 러브호텔을 만들었다. 야생동물의 종(種)을 보전하기 위한 짝짓기 공간인 셈이다.》
공식 명칭은 ‘동물 번식장’이다. 철망으로 둘러쳐진 객실은 야외 공간과 한 평 남짓한 동굴로 꾸며져 있다.
이곳은 동물원의 일반 사육장과 다르다. 철저하게 격리돼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다. 일부 객실은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철망 일부를 나무로 막아놓기도 했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2세를 쑥쑥 잘 낳으라는 배려다. 일반 관람객이 이곳을 보고 싶다면 유럽들소 사육장 건너편에서 망원경을 이용하면 된다.
현재 토종 야생동물인 살쾡이 12마리(암컷 8마리, 수컷 4마리), 여우 1쌍, 은여우 4쌍, 늑대 1쌍, 오소리 1쌍이 1년 이상 장기 투숙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1일 오후 대공원의 도움으로 이곳을 찾았다. 사람이 나타나자 늑대 한 쌍은 화들짝 놀라며 객실 내 바위동굴 속으로 황급히 몸을 숨겼다. 옆에 있던 사육사 배복수(裵福壽·46)씨는 “이곳 동물들은 인기척만 있어도 바짝 긴장한다”고 말했다.
“새끼를 낳았을 때는 사육사도 함부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자칫 부정탄다고 해서 어미가 새끼를 물어 죽이기 때문이죠. 지금은 살쾡이가 분만을 앞두고 있어 대단히 예민합니다.”
러브호텔 투숙 조건은 까다롭다. 순수한 한국 토종 야생동물이어야 하고 ‘멸종 위기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으로 보호받고 있는 희귀종이어야 한다. 그리고 2세를 가질 수 있을 만큼 건강해야 한다.
이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하면 전담 주치의로부터 정기 건강검진까지 받는 특혜를 누린다.
지난해 이곳에선 살쾡이가 7마리, 오소리가 1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2세를 출산하면 방을 빼야 한다. 새끼를 낳은 살쾡이와 오소리도 올 가을이면 일반 사육장으로 옮겨져 관람객들에게 보는 즐거움을 제공하게 된다.
초여름 날씨를 보인 이날, 오소리 암컷이 객실 한구석에 있는 욕조의 수도꼭지를 입으로 틀더니 목욕을 시작했다. 그 모습이 관능적이었을까. 동굴 속에 있던 수컷이 달려 나와 연신 몸을 비벼댔다. 암컷은 귀찮은 지 갑자기 수컷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얼마간 버티던 수컷은 끝내 꼬리를 내리고 동굴 속으로 도망치더니 고개를 삐죽 내밀곤 암컷의 눈치만 살폈다.
이 모습을 본 사육사 배씨가 껄껄 웃었다.
“허허 그놈들. 수컷이 기다린다. 암놈아. 좀 동굴 속으로 들어가줘라. 그래야 너희도 좋고 우리도 좋지.”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