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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권오길/바이러스와 인간 ‘도전과 응전’

입력 | 2003-05-02 18:34:00


어디서 도깨비같이 날아든 바이러스가 이렇게 세상을 놀라게 하고, 떠들썩하게 난리를 피우는 것일까. 사스(SARS·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의 준말·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란 새로운 병이 온 세상을 덮치고 있다. 말 그대로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신종 유행병이다.

여기서 바이러스의 특성을 좀 짚고 넘어가자. 바이러스는 이리 보면 생물이고 저리 보면 무생물인 요물단지다. 생물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번식을 한다는 점이고, 무생물일 수밖에 없는 것은 주성분이 단백질과 핵산, 그리고 일부 지방단백질(lipoprotein)로만 구성되어 있어 삶은 달걀에 비유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살아있는 숙주세포(식물 동물 세균) 안에 들어가면 번식을 하니 생물이지만 세포 바깥에 있으면 휴면 상태에 머무는 무생물이다. 그리고 바이러스는 세포의 단계에 못 미치는 하등한 수준의 단순한 ‘입자(粒子·particle)’다.

바이러스는 입자 안에 들어있는 핵산에 따라서 DNA 바이러스와 RNA 바이러스로 나뉘고, 단백질이 주성분인 겉껍질의 크기나 모양도 중요한 분류 기준이 된다. 사스와 관련이 있는 바이러스를 ‘코로나 바이러스’라 부르는 것도 그 모양이 개기일식 때 태양의 둘레에 보이는 빛살인 코로나를 닮았기 때문이다.

그 흔한 감기에서 무서운 에이즈까지 모두 바이러스가 발병시키는 것인데, 날고뛰는 현대과학이 이것 하나를 잡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이상스럽기 짝이 없는 놈이 바로 바이러스다. 무엇보다 그때그때 곧바로 변종이 생겨버리는 것이 애를 먹이는 가장 큰 이유다. 여기서 변종이란 돌연변이를 말한다. 핵산이 바뀐다거나 바이러스끼리 핵산(유전인자)을 서로 교환해 어느새 다른 바이러스가 되어버리니 잡을 듯하다가도 그만 놓쳐버린다.

동물에 기생하던 것들이 갑자기 사람에게 옮아 붙는 것도 탈이다. 닭, 오리, 돼지, 원숭이, 소 등 동물의 몸속에 살던 것이 변성하면서 종(種)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어 숙주를 바꾸는 것이다. 지금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사스도 그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마도 돼지가 아니면 새나 소에 살던 놈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변종 바이러스가 사람에 전염된 것이 여럿 있다. 1957∼1958년 세계적으로 100만명 넘게 희생자를 낸 ‘아시아 유행성 감기’는 오리에 기생하던 바이러스가 돼지에 들어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사람에 전염됐던 것이다. 1981년에 발견돼 지금까지 죽은 사람만도 2500만명이나 되는 에이즈 역시 아프리카 원숭이가 바이러스를 사람에 옮겼다고 본다. 이것 외에도 여러 병의 뿌리가 동물들에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사스라는 병은 추적 결과 작년 11월 중국 광둥성에서 처음 나타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중국 당국이 세계보건기구(WHO)에 빨리 보고하지 않고 은폐해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 것도 참고할 일이다. 폐렴 증상(세균성)을 나타내는 환자에게 항생제를 처방했으나 낫지 않는 데서 의문을 가졌고, 그것이 사스 바이러스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바이러스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공항에는 비상이 걸렸고,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마스크를 쓰는 것으로 완전 예방이 될 수는 없지만 흡입하는 바이러스의 수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는 효과가 있다. 즉, 바이러스를 많이 마시면 사스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인간이 병을 따라잡는 약을 개발하고 있고 항체가 생겨 병을 이기기도 하지만, 어느 병이나 기승을 부린 다음에는 저절로 수그러들고 만다는 점이다. 수많은 병이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지 않았던가. 앞으로도 새로운 병이 생겨났다 사라질 것이다. 어떤 이는 세계사를 전쟁의 반복이라고 했지만, 실제론 유행병과의 다툼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사람과 병은 언제나 평행선을 달려왔다. 단지 병이 한 발자국 앞서 왔을 뿐이다.

권오길 강원대 교수·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