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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힘얻는 개헌론]'反北' 여론 업고 日우익 勢확산

입력 | 2003-05-04 18:41:00


자민당 헌법조사회 헌법개정 초안 골자-천황을 국가원수로 규정-'히노마루'를 국기, '기미가요'를 국가로 규정-육해공 3군과 기타 전력 보유-집단적 자위권 규정-총리에게 국가비상사태명령 발동권 부여-국민에게 국가방위 의무 부여

일본의 현행 헌법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인 1947년 5월 3일 공포된 것이다. 당시 점령군인 미군의 초안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헌법은 종전의 ‘대일본제국’ 헌법을 대체해 △주권의 소재를 천황에게서 국민으로 옮기고(주권재민) △무력행사의 영구포기(평화주의) △기본적 인권존중을 명시했다.

일본은 이 평화헌법 덕분에 막대한 국방비를 지출하지 않고 경제적 부흥을 일궈낼 수 있었다. 그러나 우익세력은 군대 보유를 금지하고 천황을 상징적인 존재로 격하시킨 데 대해 끊임없이 반발해 왔다.

매년 5월 3일 ‘헌법의 날’에는 개헌을 주장하는 우익과 호헌을 외치는 양심적 사회단체간의 공방전이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면서 팽팽히 맞서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갑자기 개헌론이 힘을 얻고 있다. 이라크전쟁이나 북한 핵개발로 인한 위기감이 확산되면서 국가안전보장을 내세운 우익의 ‘목청’이 호헌파의 ‘논리’를 압도하고 있는 것.


▽주목되는 집권당의 개헌 초안=일본 정계는 우익의 개헌 요구가 계속되자 2000년 1월 중의원과 참의원에 각각 헌법조사회를 설치해 2004년 말까지 개정안 틀을 마련하기로 했다. 개헌 논의는 몇 년간 별다른 진전이 없었지만 9·11테러와 이라크전쟁, 북한 핵문제를 계기로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테러나 전쟁에 대비하려면 자위대를 지금처럼 전수(專守·방어에만 전념하는 개념) 방위의 틀에 가둬서는 곤란하다는 주장이 급부상한 것. 이라크전쟁에서 자위대 이지스함을 인도양에 파견하는 등 자위대 활동범위를 슬금슬금 넓혀간 것도 개헌론에 힘을 실어줬다.

나카야마 다로(中山太郞) 중의원 헌법조사회장은 “일부 정당을 제외하면 현행 헌법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추세”라며 개헌논의 가속화를 부추겼다.

▽밀리는 ‘평화헌법 호헌론’=일본에서 헌법을 개정하려면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고 국민투표에서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현재 자민당 공명당 보수신당 등 여권은 물론 개헌에 소극적이던 제1야당인 민주당도 “시대가 바뀐 만큼 어떤 식으로든 헌법 개정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돌아섰다. 보수 우경화하는 여론의 흐름을 읽고 편승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

일관되게 반대론을 펴는 정당은 사민당 공산당 등 좌익계열로 축소된 실정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실제로 헌법을 고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본 국민 상당수가 헌법 개정을 군국주의로의 회귀로 경계하고 있는데다가 한국 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적 마찰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목되는 ‘해석 개헌론’=일각에서는 개헌 강행이 정치적으로 쉽지 않은 점을 감안해 현행 헌법의 해석만을 바꿔 ‘사실상의 개헌효과’를 내자는 움직임도 있다.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 인정 여부가 대표적인 예.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는 “만일 일본을 지켜주는 미국의 항모가 동해에서 북한의 공격을 받으면 일본은 뒷짐만 지고 있을 수 있는가”라며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한마디만 하면 해석을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 개정이 실제로 이뤄지든, 해석만 바꿔 비슷한 효과를 내든 일본 사회의 보수 우경화는 대세를 이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