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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김일영/'통합의 리더십'은 어디에

입력 | 2003-05-05 18:01:00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한국 사회에서는 대대적인 파워 시프트(power shift)가 발생했다. 파워엘리트층이 세대 면에서 대폭 하향 조정되었고, 경력 면에서도 주변층의 중심부 진입이 두드러졌다. 현대사에서 이에 비견될 만한 예는 아마도 5·16쿠데타로 군부가 집권한 이후밖에는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러한 파워 시프트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권력에서 소외된 집단은 말할 것도 없고 권력을 차지한 세력도 이 점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특히 후자는 중심부를 차지했으면서도 여전히 주변부적 의식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盧대통령 ‘링컨 벤치마킹’ 이제부터 ▼

노 대통령은 가장 이상적인 대통령상으로 미국의 링컨 대통령을 꼽고 있다고 한다. 노 대통령과 링컨은 닮은 점이 많다. 특히 불굴의 의지로 주변집단에서 권력 중심부로의 진입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학벌의 벽을 극복하고 변호사로 입신(立身)한 것이 일단계라면, 다음 단계에서는 변호사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고, 마지막으로 모두의 예상을 깨고 경력이 일천(日淺)한 정치인에서 대통령으로 양명(揚名)하는 데 성공했다. 적어도 이 단계까지는 노 대통령은 링컨과 유사한 과정을 밟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다. 대통령이 되는 것 자체가 노 대통령의 목표는 아니었을 것이다. 링컨과 같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것이 그의 궁극 목표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링컨에 대한 벤치마킹을 이제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링컨이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받는 것은 노예해방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을 해체위기에서 구해 오늘날과 같은 연방의 형태로 존속시켰다는 점이 링컨이 존경받는 진짜 이유다. 통합의 리더십이 오늘의 링컨을 있게 만든 주된 원동력인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현재까지 노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링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약자 내지는 희생자의 논리’에 입각해 정제되지 않은 언어들을 쏟아내는 노 대통령의 모습은 통합보다는 분열의 리더십에 가깝기 때문이다. 개혁과 진보를 표방하는 노무현 정부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을 펴는 것은 당연하며, 이는 사회통합을 위해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 물론 완급조절은 필요하겠지만. 그러나 약자를 위한 정책을 시행한다는 것과 대통령이 소위 ‘강자’를 겨냥해 심중의 생각을 가공되지 않은 언어로 쏟아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정책면에서 진보적인 대통령이 언어적으로 사회 분열적인 대통령이 되어야 할 필연성은 없다. 오히려 그런 대통령이야말로 의도적으로라도 통합의 언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노 대통령의 이런 모습은 자칫하면 ‘배설(排泄)의 정치’로 오인 받기 쉽다. 과거의 정치역정에서 그가 특정 언론으로부터 호의적인 대접을 못 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점을 자꾸 강조하면 언론개혁이라는 그의 의도가 사감(私感)이 개재된 정책으로 오해될 수 있으며, 특정 언론에 대해 감정적 배설을 하려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대통령의 이런 언행은 자신의 생각을 정부 전체에 강요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대통령이 공개된 자리에서, 그것도 공직자들과의 연찬회에서 거듭 ‘권언(權言) 간의 강자 카르텔’의 해체를 개진한 것은 언론개혁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으로 비친다. 대통령과 정부는 손발이 잘 맞아야 하지만 그 방향이 대통령 개인의 감정이어서는 곤란하다.

▼감정 개입된 ‘분열의 정치’ 극복을 ▼

주변에서 중심으로 진입했으면 그에 걸맞은 책임 있는 언행이 필요하다. 그것은 통합의 정치를 추구하는 것이어야지, ‘배제의 정치’ ‘분열의 정치’를 지향하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현재 우리 앞에는 시급한 과제가 산적해 있다.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북핵문제를 비롯해 경제난으로 가중되고 있는 청년실업 문제 해결 등 할 일이 많다.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소진하지 말자. 이 점에서 대통령은 하루빨리 피해의식을 극복하고 적과도 동침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