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프로야구 4개 구장의 밝기가 기준치에 크게 못 미친다는 방송 보도를 봤다. 대전과 광주, 대구, 청주 구장은 내야 2000, 외야 1500럭스의 기준치를 한참 밑돌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프로야구장은 참 한심한 곳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현재 1군 경기가 열리는 곳은 LG와 두산이 한 지붕을 쓰는 잠실을 비롯해 보조구장인 청주, 마산, 인천구장까지 모두 10개. 하지만 모두 전용구장이 아니라 주인없는 임대구장이다 보니 신축에서 개축, 관리, 운용에 이르기까지 선수와 팬에 맞춘 서비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단적인 예가 만주벌판처럼 넓기만 한 잠실과 사직구장. 좌우 100m, 중앙 125m에 이르는 잠실은 미국과 비교해도 넓은 편이다. 그래서 서울팀이 홈런왕을 배출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95년 OB 김상호가 첫 홈런왕이 됐지만 25개에 불과했고 98년 두산 우즈(42개)는 서울팀만 아니었으면 60개를 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동안 삼성과 해태, 빙그레가 홈런왕을 나눠먹다시피 한 것은 바로 이 때문. 삼성 이승엽은 99년 대구의 66경기에서만 32개의 홈런을 쓸어담았다. 반면 지난해 잠실 최다홈런은 두산 김동주가 기록한 13개가 고작. 사직구장은 원정팀인 현대 심정수가 날린 5개가 최고다.
이 얼마나 우스운 얘기인가. ‘타격왕은 벤츠를 타고 홈런왕은 캐딜락을 탄다’는 얘기가 있듯이 야구의 꽃은 홈런이다. 김동주가 지방팀 선수였다면 지금쯤은 이승엽과 견주는 대표적 홈런타자가 됐을 것이다. 롯데 시절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마해영이 삼성 이적 후 슬러거로 변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비해 외국은 연고 스타를 키우기 위해 거액을 들여 홈구장을 바꾼 예가 많다. 박찬호가 2000년 구장 개막전에서 승리투수가 된 샌프란시스코의 퍼시픽 벨파크는 배리 본즈의 홈런 양산을 위해 오른쪽 펜스 길이를 93.6m로 줄였다. 중앙이 128m인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기형적인 구조인가를 알 수 있다.
1912년 문을 연 메이저리그 최고령 구장인 보스턴 펜웨이 파크와 1923년 완공된 뉴욕 양키스타디움은 베이브 루스를 위한 맞춤 구장이다.
펜웨이 파크는 오른쪽 펜스 길이가 92m(중앙 128m), 양키스타디움은 95.7m(중앙 124.4m)에 불과하다. 양키스타디움은 루스가 트레이드돼오자 시즌에 맞추기 위해 불과 284일 만인 4월19일 완공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국내에도 비슷한 예는 있다. 김성근씨는 태평양 부임 첫 해인 89년 인천구장 외야에 7m짜리 초대형 그물을 쳐 만년꼴찌팀을 일약 3위에 끌어올리는 ‘짠물 야구’ 돌풍을 일으켰다.
프로야구의 중흥을 위해선 선수의 경기력 향상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구장에 손을 대려고 하면 가로젓기부터 하는 지자체의 무사안일주의만 사라진다면 말이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