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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입말로 들려주는…' 고소한 옛 이야기

입력 | 2003-05-06 16:52:00



◇입말로 들려주는 우리겨레 옛이야기 (언어편/경제편)/이향숙 글 강은경 유현아 그림/112∼120쪽 각권 7000원 영림카디널(초등 1∼4년)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가난해진다고 했던가. 이야기 듣기가 오락거리였던 시절에 이 말은 ‘TV 고만보고 공부 좀 해라’라는 요즘 말과 서로 통하는 말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옛이야기와 TV는 재미있다는 점은 같지만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같은 느낌을 가진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의지하며 나누는 이야기 속에는 자연스레 익혀지는 삶의 진리가 있다. 지금 세태에서 이론으로 외우는 삶의 기술을 예전 사람들은 어떻게 이야기 했을까. 이 책은 이런 이야기들을 ‘우리말 이야기’와 ‘살림살이 이야기’처럼 주제별로 나누어 실었다.

‘우리말 이야기’는 같은 말을 쓰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아주 섬세한 감정과 재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하면 어떤 일이든 한다는 머슴이 있었다. 주인은 밥 좀 주고 옷이나 한 벌 주면 되겠거니 생각하고 좋아했는데, 숟가락으로 일일이 떠 먹여주어야 하고 , 팔베개 해서 자장자장 재워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주인의 심정은 어떨까. 더군다나 문서로 작성하여 만천하에 공개하기도 하였으니… 읽고 나서 돌아서서 생각해도 재미있다.

‘살림살이 이야기’는 재물에 관한 이야기다. 지금 유행처럼 퍼지고 있는 경제 교육서보다 훨씬 철학적이고 실용적이다. 돈은 일을 해야 버는 것이고 죽을 힘을 다해서 지켜야 하는 것이지만 진짜 부자는 재물을 많이 쌓아두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잘 나누어 쓰는 사람이라는 철학이 전체에 깔려 있다. 그런 어려운 철학을 돈은 오래 묵혀두면 귀신이 된다거나, 그림 속의 아이에게 혼나는 이야기 등으로 기억에 남게 해준다.

‘재주많은 일곱쌍둥이’에서 일곱명 아들의 이름은 옛이야기 듣는 재미 중 최고인 것 같다. ‘천리보기만리보기, 진둥만둥이, 여니딸깍, 맞아도간질이, 자른둥만둥, 더우니차니, 기프니야트니’ 이 일곱 쌍둥이의 모습은 영화 ‘엑스맨’의 돌여변이보다 흥미진진하다.

이야기는 들어서 재미있다. 하는 것 보다 남에게 그걸 전해 줄 때 더 힘을 갖는다. 그래서 이야기 하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이야기의 재미가 달라진다고 한다. ‘옛이야기가 좋아서 이야기가 있는 곳이면 턱받치고 앉았던 사람’이라는 소개에 어울리게 글쓴이는 입말로 이야기를 하는데 재주가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지금까지 나온 어떤 옛이야기 책보다 술술 잘 읽힌다.

옛이야기는 읽는 재미보다 듣는 재미가 훨씬 크다. 어둑한 거실에서 이 책을 읽어주면 이야기에 재주가 없는 엄마라도, ‘턱받치고 앉아 듣는’ 행복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을 것 같다.

김혜원 주부·서울 강남구 일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