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도록 아름다운 오월,/ 모든 싹들이 돋아날 때/ 나의 마음속에서도/ 사랑은 일어났느니…’(‘시인의 사랑’ 중 ‘놀랍도록 아름다운 오월’)
하인리히 하이네를 오늘날 고아(高雅)한 서정시인으로만 기억하는 것은 다소 모순적이다. 하이네는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론’ 서문을 부탁하려 했을 정도로 이름난 당대의 참여문인이었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 그의 서정시가 널리 읽히는 것은 특유의 아취와 품격 때문이라는 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슈만은 그의 서정시 중 사랑의 환희와 아픔을 소재로 한 16편의 시를 골라 가곡집 ‘시인의 사랑’을 발표했다. 일정한 줄거리는 없지만 흔들리는 봄의 대기와 같은 아련한 이미지 속에 사랑의 싹틈과 좌절, 맹세와 망각을 담은 이 가곡집의 노래를 따라가며 듣노라면 어떤 시대에나 있을 법 한 젊은이의 열망과 아픔에 충분히 공감이 간다.
마지막 곡 ‘불쾌한 옛날 노래’에서 시인은 사랑의 기억을 하이델베르크의 술통보다 큰 관에 넣어 묻어버리겠다고 얘기했다. 어느 봄날, 하이델베르크의 요새에 올라가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그 어마어마한 나무 술통을 보았다. 시인은 얼마나 큰 고통을 그 안에 묻어버리고 싶었던 것일까.
40년 동안 이 작품의 최고 명연으로 꼽혀온 음반은 독일 테너 프리츠 분덜리히의 앨범(DG·1965). 60년대 30대의 젊은 나이로 불운하게 사고를 당해 이승을 하직했던 분덜리히는 뮤지컬과 유행가에서도 독특한 매력을 나타내는 가수였지만 시의 향취를 살리면서도 유약함이나 진부함에 빠지지 않는 두뇌파 테너였다. 최근 TV광고에 등장한 베토벤의 가곡 ‘그대를 사랑해(Ich liebe dich)’도 이 앨범에 실린 목소리를 담고 있다.
최근의 디지털 연주 중에서는 영국테너 이언 보스트리지의 음반(EMI·1998)이 많은 팬을 얻고 있다. 보스트리지는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대에서 역사학과 철학을 전공, 90년 옥스퍼드에서 ‘1650∼1750년대의 마법’으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
전형적인 테너의 영역에서 카운터테너의 높은 음까지 매끈하게 소화하는 그는 지적이면서도 단호하게 들리는 독특한 음성,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기울인 정밀한 가사해석으로 정평을 얻고 있다. 그의 음성도 CF에 단골로 등장한다. 최근에는 한 보험광고에 등장하는 슈베르트 ‘물방앗간 아가씨’ 중 ‘아침인사’가 그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역시 EMI에서 발매된 바리톤 토머스 햄프슨의 앨범(1994)도 ‘정통 스타일’은 아니지만 품격 높은 연주로 추천할 만하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