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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돌연변이 벼품종 10만종 재배성공 안진흥씨 부부

입력 | 2003-05-07 19:01:00

포항공대 생명공학관 옥상에 마련한 벼온실 안에 서 있는 안진흥 안경숙씨 부부. -포항=이권효기자


포항공대 생명공학관 3층 옥상에는 돌연변이 벼 품종 4만여종이 자라고 있다. 이곳에서 머지않은 장래에 세계에서 가장 맛있고 생산량도 많은 ‘기적의 벼’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이 실험현장을 영국의 과학전문잡지 ‘네이처’가 최근호(4월24일자)에서 ‘농업혁명을 위한 하나의 비결인가(A recipe for revolution?)’라는 제목으로 다뤘다.

네이처는 “한국의 포항공대 안진흥(安鎭興·55·기능유전체연구소장) 교수가 발견한 10만여종의 돌연변이 집단은 벼 유전체의 기능을 밝힐 수 있는 단서를 마련한 것”이라며 “벼 유전체의 기능을 향상시키는(boost) 돌연변이를 찾은 것은 세계적으로 주목할 만한 연구”라고 평가했다.

안 교수가 일본과 중국보다 2년가량 앞선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데는 아내 안경숙(安京淑·52)씨의 ‘연구 뒷바라지’가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안 교수가 95년 포항공대에 부임한 이후 날마다 실험실에 나와 조용하게 남편을 돕고 있다.

안 교수가 미국 워싱턴주립대 교수로 근무하던 90년대 초반 그는 미술학도였지만 이제 안 교수팀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벼를 개발하느냐 아니냐는 아내의 손길에 달려 있을 정도로 중요한 연구 동반자가 됐다.

“국산 벼 품종의 현미에 남편이 찾은 DNA를 결합시켜 4개월 정도 관리하면 새로운 벼가 싹을 틔웁니다. 10만개 목표를 언제 달성하나 싶었는데 5년 동안 정성을 쏟았더니 조그만 꿈이 이뤄졌네요.” 조용한 성품인 안씨지만 이 순간은 기쁨을 감출 수 없다는 듯 환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부터는 주위의 주부 10여명도 조직배양에 동참했다.

벼 유전자(대략 6만개)의 서열은 지난해 일본학자 등이 밝혔지만 유전자들의 기능을 밝히는 과제는 안 교수팀이 비로소 첫발을 내딛게 된 것.

안 교수 부부의 ‘농업과 벼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쌀은 세계 인구의 절반이 주식으로 삼는 중요한 작물인 데다 우리나라에는 2004년에 쌀시장이 개방되면 우수한 품질의 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전체를 분석하는 실험과 연구는 제가 하면 되지만 실제로 돌연변이 벼 품종을 배양하는 일은 저보다 아내와 주부들이 훨씬 더 잘합니다. 과학이 근본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섬세한 손길 같은 예술적 측면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안 교수는 “벼 조직배양도 미술(美術)”이라며 아내를 격려했다. 그는 농촌진흥청이 2010년까지 농업생명공학 세계 5위 진입을 목표로 추진하는 국책사업인 ‘바이오그린 21’의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9일 돌연변이 벼 품종을 학교 근처 논에 모내기 할 예정인 안 교수 부부는 “유전자 기능을 밝힌 뒤 개발하는 벼 품종은 국제적으로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각국의 연구가 국가차원에서 치열하다”며 “‘농사는 천하의 근본’이라는 옛말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시대가 곧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