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기차역에 앉아 있습니다.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은 동아일보가 연중 기획으로 싣고 있는 ‘신뢰 경영’ 시리즈 가운데 ‘환경경영-지속가능한 성장’ 편을 취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곳에서 방문한 미렉(MIREC)은 수명이 다한 전자제품을 가져다 분해해서 쓸 수 있는 부품을 재활용하는 업체입니다.
공장의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야적장에는 주요 부품을 떼어낸 전자제품의 주검들이 작은 언덕을 이룬 채 분쇄기로 들어갈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눈을 의심하게 한 것은 포장도 뜯지 않은 박스들이었습니다. 유행이 지나 또는 수요 예측을 잘못해 시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제품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20세기초 헨리 포드에 의해 대량생산이 도입된 후 인류는 넘치는 상품 속에서 풍요로움을 즐겼습니다. 기업의 고민은 어떻게 제품을 싸게 많이 만들어 팔 것인가에만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이젠 쏟아낸 상품의 처리가 문제가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불과 100년도 안 돼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소비는 미덕입니다. 소비가 위축되면 기업의 실적이 나빠지고 투자가 위축되고 임금이 줄어 다시 소비가 줄어 경제는 침체의 늪으로 빠지게 됩니다. 어느 시점이든 그 고리를 끊고 선순환으로 돌리는 게 지금의 경제 주체들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선순환도 언제일지 모를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의 모습은 아닌지요? 당장 급하지 않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지속가능한 성장(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개념은 애초에 우리 세대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지구는 우리가 후손들에게 빌려 쓰고 있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대량생산의 시대에 기업을 시작해서 선진 기업을 모방하기 바빴고 악착같은 근면성으로 그들을 극복해나간 우리 기업들은 경쟁 환경이 180도 바뀌는 상황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요? 인식의 전환과 함께 새로운 경쟁 역량을 준비해야하는 중대한 시점에서 말입니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