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행위나 사실의 적절성 여부는 누가 어느 시점에 어떤 시각에서 보는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어느 정도가 적절한 규모의 안보부담인가 하는 것도 그런 예가 아닌가 한다. 현재와 미래의 안보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따라 안보부담 규모의 적정선을 보는 시각은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에 안보부담의 규모가 반드시 국가 재정능력의 일정 부분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무리가 따른다. 그런가 하면 다른 국가가 이 정도를 쓰니까 우리도 어느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도 어리석다.
우리가 부담해야 하는 적정 수준의 안보부담은 어느 정도일까. 감상적이 아닌, 합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논리를 생각해 보자. 왜 안보부담이 필요한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우선 적이 위협적이거나 적으로부터 위협이 예상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된다. 위협의 정도에 따라 부담의 규모가 결정될 것이다. 무장간첩 침투나 군사적 충돌 등 북한의 도발이 한창이던 1960, 70년대의 국방비는 국가예산의 30%를 초과한 적도 있다.
국가의 능력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잘 사는 사람이 씀씀이가 큰 것과 같은 이치인데, 불행히도 우리가 그런 경우는 아니다. 그런가 하면 국가 지도자와 국민이 안보를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서도 국방비 규모는 달라질 수 있다. 90년대 이후 안보에 대한 개념 변화와 설익은 평화무드 조성은 국방비 비중이 정부 예산의 20% 이하로 줄어드는 데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주변에서 누가 우리를 도와 줄 수 있는가도 우리의 안보부담 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이다. 싫건 좋건 주한미군의 존재가 우리의 안보부담을 줄여 주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미래 안보에 대한 적정한 투자규모를 결정하려면 이러한 요소들이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반영하는 현명한 판단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안보와 관련된 미래는 과거와 명백하게 다르다. 먼저, 북한의 핵개발은 의혹 차원을 넘어 현실이다. 잘못 사용될 수 있는 북한의 핵무기가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머지않은 장래에 주한미군이 철수하든지, 아니면 역할이 현저하게 변화될 것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 와중에 감상적인 반미감정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의 안보환경에는 새로운 변화가 예상되지만 북한 및 미국과 관련된 내용만 봐도 현 수준의 국방비 부담으로는 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음이 분명해진다. 2002년의 경우 우리는 국방비로 16조3640억원을 썼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2.8%, 정부재정 대비 15.5% 수준이다. 안보 전문가들은 안보환경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국방비 수준을 GDP 대비 4% 정도로 보고 있다. 사실 그 정도가 과다한지, 부족한지는 알 수 없다. 안보라는 과일은 값을 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라를 지키는 노력에는 넘침이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400년 전 임진왜란이 남긴 고통은 너무 먼 역사라 치더라도 불과 반세기 전 동족상잔의 처참함을 벌써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잘못을 또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목진휴 국민대 교수·정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