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뀌면 언제나 변화된 세상의 기미를 절묘하게 표현하는 새로운 말들이 나오곤 한다. ‘오스탈기’도 그러한 말 가운데 하나다. 노스탤지어(nostalgia)를 독일말로 ‘노스탈기’(Nostalgie)라고 한다. ‘오스트’는 동(東)이란 뜻이다. ‘노스탈기’에서 N을 뺀 ‘오스탈기’는 통일에 실망한 동독 사람들이 옛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동독 향수’를 비아냥대는 말이다.
옛 서독(독일연방공화국)에 흡수 통일된 옛 동독 지역을 오늘날엔 ‘신(新)연방주(州)’라 부른다. 신연방주민의 동쪽에 대한 향수란 그들의 ‘과거에 대한 향수’다. 과거란 아름답고 소중한 것일 수 있다. 하물며 통일 후 무한 경쟁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냉혹한 새로운 현실에 내던져진 신연방주 사람들이, 아직도 서쪽보다 소득수준은 떨어지면서 더 높은 실업률에 허덕일 때 사회적 정의와 평등을 강조했던 옛 동독의 과거에 그리움의 시선을 던져본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광복공간 떠돌던 ‘北에 대한 동경’▼
사람이란 ‘현재’에 사는 일이 거의 없는 묘한 동물이란 말이 있다. 우리는 항용 과거를 회상하고 있거나 미래를 꿈꾸며 살고 있을 뿐, 현재를 사는 경우란 부상의 통증을 체험할 때나 성적인 쾌락에 탐닉할 때가 고작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보다 확실한 것은 대부분의 사란들이 과거와 미래는 여러 가지로 미화하면서도 현재를 미화하는 경우란 좀처럼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미 없는, 또는 아직 없는 것들을 흔히 미화하고 동경(憧憬)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들은 지저분하고 따분한 일상적 현실의 저편에 있는, 경계선 저편에 있는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도 미화하고 동경하곤 한다. 우리는 그러한 현상을 광복 후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특히 지식인과 젊은이들 사이에서 숱하게 보아왔다. 38선의 북쪽(North)에 대한 동경, 일종의 ‘노오스탤지어’(North-talgia) 현상이었다.
광복 공간에 널리 퍼져 있던 이러한 북에 대한 동경은 6·25남침 전쟁으로 북의 미화될 수 없는 현실이 남쪽에 현전(現前)하게 되면서 거의 한 세대 동안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 1980년 광주! 제 나라의 국토에서 국민을 국군이 학살하는 끔찍한 참극이 벌어졌다. 이른바 신군부의 권력 찬탈 과정에서 국가의 탈을 뒤집어쓴 거대 폭력이 저지른 그 같은 부조리극을 목격한 젊은이들, 이른바 386세대라고 하는 6·25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광주’ 이후 일종의 ‘국가 허무주의’에 빠짐으로써 그들 내부에서 새로운 친북 ‘노오스(North)탤지어’가 부활했다고 해서 그게 그들의 잘못이라고만 몰아붙일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역사가 반복하는 것을 직접 구경한다는 뜻일까. 30년 만에 ‘네오 노오스탤지어’를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을 애타비즘(격세유전) 현상이라고 봐야 할 것인지…. 다만 386세대가 고뇌하던 80년대를 대학의 캠퍼스에서 함께했던 노교수로서 한 가지 확연히 증언할 수 있는 것은 비록 그들의 분노가 지향한 탈출구에는 과오가 있었다손 치더라도 그들의 분노 자체는 정당했다는 사실이다. 북쪽을 향한 그들의 동경의 시선은 환상으로 흐려 있었으나 남쪽(광주)에 대한 그들의 성난 얼굴은 정의로웠다는 사실이다.
▼최근 親北풍조 이해하기 어려워 ▼
광복 공간의 ‘노오스탤지어’는 인민군의 남침으로 말끔히 치유가 돼 이후 30년 한 세대 동안 그 후유증조차 없었다. 그를 위해 우리는 동족 전쟁이란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그에 견줘 본다면 386세대는 어떤 의미에선 복 받은 세대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공산주의 현전(現前)이란 비싼 대가를 치르는 대신 1990년을 전후해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의 총체적 붕괴를 체험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세기가 바뀐 오늘에 이르도록 만일 이 땅에 아직도 ‘네오 노오스탤지어’의 망령이 배회한다면 그건 무슨 영문일까. ‘광주’가 청산되기도 전에 그 주된 가해자와 피해자가 너무 쉽게 화해한 때문일까. 또는 북쪽의 굶주리고 있는 세습 전제왕조 체제를 ‘햇볕’이 너무 미화해준 때문일까.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