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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세이]김철환/건강에도 'DIY' 가 필요합니다

입력 | 2003-05-12 18:22:00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가족이 아프면 우선 경험이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나 부모가 1차로 판단해 필요한 처방을 하고, 그래도 낫지 않으면 평소 잘 아는 단골 의원을 찾아 치료를 받았다. 무조건 병원에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가족 중 경험 있는 사람이 판단해 1차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자가 치료’(self-care)다.

자가 치료는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수많은 건강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많이 이용되며, 가장 인간적이고 경제적인 치료방법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들어와 핵가족화가 이뤄지면서 이 전통이 사라지고 있다. 옛 어른들은 아이가 우는 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어느 정도 아픈지를 알았지만, 요즘 젊은 부모들은 사소한 문제만 생겨도 무조건 병원으로 달려간다. 감기의 경우에도 매일 주사 맞고 코에 약을 뿌려야만 좋은 줄 아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의사를 만나지 않아도 되는 문제를 갖고 의사를 찾고, 한두 번이면 해결될 문제로 지나치게 많은 치료를 받는 과잉 의료 이용과 과잉 진료도 심각한 수준이다.

건강 문제에도 세상의 다른 문제처럼 상식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상식적인 접근이란 일반적이고도 효과적이어서 양식 있는 전문가가 동의하는 올바른 방법을 의미한다. 스스로 치료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그래도 해결할 수 없을 때는 평소 자신과 가족을 잘 아는 단골의사나 주치의에게서 진료 받는 것을 말한다. 주치의는 대통령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국민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건강문제가 있을 때 전문가를 찾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무조건 전문가만 찾는 것도 문제다. 무조건 의료인들에게만 의존하다 보면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잃고 의료비용만 커질 뿐이다. 아울러 병을 과대 포장하거나 과잉 진료하는 의료인을 만나 의원성 질환(醫原性 疾患·iatrogenic disease: 병원에서 만든 질병)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를 찾아야 할 경우와 스스로 해결할 경우를 구별하는 것이 때로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나 가족이 문제 해결의 중심에 선다는 의식과 태도가 중요하다. 진정한 전문가라면 자신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만심 때문에 일반인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무시하지 않는다. 진정한 주치의라면 아예 건강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도와줄 뿐 아니라 일반인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줄 수 있어야 한다.

의료소비자가 자가 치료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이 중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부분은 아직 한국의 수준이 낮다. 요즘 인터넷을 통한 의료정보가 유용하게 활용되지만,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 중에는 해로운 정보도 섞여 있어 이를 분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소비자 단체가 많이 결성돼야 한다. 이들은 의료정보의 질을 평가하고 좋은 의료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DIY(Do It Yourself)’ 정신은 가구를 만들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유용하다.

김철환 인제대 의대 서울 백병원 교수·가정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