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2’의 악당들이 벽 등 물체를 자유롭게 통과할 때 컴퓨터그래픽을 응용한 특수효과가 이용된다. ‘매트릭스’의 세계관에서 이들은 곧 ‘시스템 속에서 작동하는 프로그램’일 뿐이다.
《궁금증을 증폭시키며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매트릭스2 리로디드(Matrix Reloaded)’가 모습을 드러냈다. 23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2편에서는 네오(키아누 리브스)가 뉴욕의 10배 이상 크기인 매트릭스 메가 시티를 시속 2000마일로 날아다니는가 하면 100명의 복제 에이전트들과 대결한다. 또 14분에 이르는 고속도로 추격장면에서는 트리니티(캐리앤 모스)의 오토바이가 마주 오는 차량들 속으로 질주한다. 이들 장면의 특수효과는 어떻게 제작됐을까.》
기자는 ‘매트릭스2 리로디드’가 촬영 중이던 지난해 5월 20일부터 4일간 국내 언론 중에서는 유일하게 호주 시드니의 촬영 현장을 방문했다.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세계 20여개국에서 온 기자들은 이곳에서 보고 들은 정보를 영화가 개봉될 때까지 공개하지 않겠다는 조건에 서명을 한 뒤에야 ‘세기의 시리즈’ 촬영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스태프들은 대형 스튜디오 안에 만들어진 메로비니언의 집에서 네오가 쌍둥이 악당과 대결하는 장면을 촬영하던 도중 기자들을 맞았다. 제작진이 극도의 ‘신비주의 전략’을 유지했던 탓에 촬영장의 시시콜콜한 면모를 ‘보여주기’보다 특수효과 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자신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는 적들 앞에서 네오는 가만히 손을 드는 것만으로 총알을 멈추게 한다. 이 장면은 물론 컴퓨터 그래픽 덕분이다.사진제공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질문은 시각효과 총감독인 존 게타에게 쏟아졌다. 그는 “2편에 쓰이는 가상효과 컷이 1000개쯤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1편의 412컷에 비해 두 배 이상의 양”이라며 “1편보다 훨씬 화려해진 볼거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각효과에 투입된 디지털 아티스트만 해도 500여명에 달한다는 설명.
2편에 쓰인 특수효과의 핵심은 가상인간 제작기법이다. 1편에서 네오를 이기지 못했던 매트릭스의 에이전트 스미스(휴고 위빙)는 네오에 대한 불타는 복수심으로 시스템에 불복종하게 되고 삭제될 위기에 처한다.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계속 네오를 추격하는 스미스는 자기 복제를 거듭해 100명까지 불어나는데 이는 모두 특수효과로 제작된 ‘가상인간’들이다.
3차원 가상 캐릭터들을 창조하기 위해 특수효과팀은 모션 캡처(Motion Capture) 기법을 활용했다고 한다. 모션 캡처 기법은 주요 캐릭터와 무술 스태프가 반사 보디수트를 입고 동작을 하면 카메라로 이를 기록해 미세한 동작들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기술이다. 이 데이터를 조합해 가상 캐릭터의 다양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 고속도로 차량 추격장면, 복제 에이전트들과 네오의 격투 장면은 수개월간에 걸친 모션 캡처 데이터 작성 과정을 통해 제작됐다.
게타는 동시에 제작하고 있던 ‘매트릭스’ 2, 3편 시각효과 작업의 핵심을 “어두움의 미학”으로 표현했다.
“워쇼스키 형제 감독을 비롯해 우리는 스탠리 큐브릭과 리들리 스코트의 팬이다. 그들의 영화에 나타나는 지적이고 세련된 ‘어두움의 미학’을 현대적 접근법으로 시각화해내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이를 위해 시각효과팀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에일리언’뿐 아니라 ‘현기증’ ‘지옥의 묵시록’ 아이맥스 영화 ‘해저 2만리’, 격투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들, 헤비급 챔피언의 경기장면, 실제 차량 충돌장면 등을 노상 틀어놓고 연구를 거듭했다.
인터뷰 말미에 화제는 제작진이 시드니의 스튜디오에 오기 직전 미국 알라메다 해군기지에 직접 3.2㎞의 고속도로를 건설해 차량 추격장면을 촬영했던 일로 옮아갔다.
“원래는 이미 있는 고속도로를 폐쇄해서 촬영하려 했는데 며칠간 고속도로를 폐쇄해주겠다는 데가 없어서 직접 닦을 수밖에 없었다. 그 장면에도 진짜 자동차와 섞이는 그래픽 자동차들이 많은데 아마 구별하기 어려울 거다.”
고속도로의 방음벽 등 세트를 만드는 데 사용한 재료들은 촬영이 끝난 뒤 멕시코로 보내 단열재로 재활용됐다고 한다.
“워쇼스키 형제 감독이 그걸 버리기 싫어했다. 그들은 좀 더 친환경적인 제작방식으로 ‘매트릭스’ 2, 3편을 만들기를 바랐다. 사실은 그렇게 하는 바람에 비용이 더 많이 들긴 했지만 (웃음).”
시드니=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매트릭스 패션 올 가을 뜬다
부스스한 머리에 허름한 옷차림으로 컴퓨터 앞에 앉은 네티즌. 그러나 채팅 사이트에 접속하는 순간부터 최신 유행 헤어스타일과 패션을 자랑하는 아바타가 되어 인터넷을 자유롭게 활보한다. ‘매트릭스’도 마찬가지. 네오는 현실세계에서 시스템의 감시를 피해 다니며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있지만 가상세계에 접속하는 순간부터 검은 롱코트를 입은 전사로 변신해 주변 환경을 마음대로 주무른다.
‘매트릭스’의 수많은 볼거리 중에서도 현실에서 어느 정도 흉내낼 수 있는 것은 의상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12일자에서 유명 디자이너들의 ‘2003년 가을 컬렉션’에는 ‘매트릭스’풍 디자인이 눈에 띈다고 소개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디자인하우스인 ‘코스춤 내셔널’은 트리니티의 착 달라붙는 가죽옷을 연상시키는 의상을 여러 벌 선보였다. 디자이너 마이클 코어즈도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의 검정 가죽 외투와 비슷한 남성복을 발표했다.
‘매트릭스 2:리로디드’의 의상 디자이너 킴 배럿은 “시대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최근 패션쇼 비디오게임 만화책을 일부러 멀리하며 오로지 시나리오에만 의존했다”고 밝혔다. 네오와 트리니티, 모피어스는 세련된 검은 가죽옷 차림인 반면 악역 스미스를 비롯한 ‘에이전트’들의 옷은 천편일률적인 양복 차림. 배럿은 에이전트들의 의상에 대해“ 익명의 범인(凡人·the Everyman)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타임지는 “이들 악역은 한편으로 21세기의 대표적 범인(犯人·Villain)인 기업 내 범죄자(Corporate Criminal)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촌평했다.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