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초능력을 지닌 돌연변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SF액션 영화 ‘엑스맨 2’를 영화평론가 부부는 어떻게 봤을까. 현재 상영 중인 ‘엑스맨 2’를 놓고 남완석 교수(전주우석대 영화과), 심영섭씨 (영화평론가) 부부가 설전을 벌였다.
남완석=‘엑스맨 2’ 어땠어? 나는 재미있던데.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에서는 영웅들이 이중생활을 하면서도 그로 인한 갈등이 없잖아. 반면 ‘엑스맨 2’에는 돌연변이들의 두려움, 갈등이 잘 살아있어. 인간적 영웅의 탄생인 거지.
심영섭=에이∼, 아냐. 1편보다 많은 돌연변이들이 나오지만 1편보다 못해. 1편의 풍부한 함의, 로그가 상대의 기를 빨아들이는 능력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에게 키스하지 못하는 아픔 같은 게 밋밋해져 버렸어. 돌연변이의 전시장에 불과해.
남완석
캐릭터의 서술에 무게둔 새로운 내러티브 채택 컴퓨터그래픽 쓰는 목적은 시각적 쾌감 위한 것
남=그렇지 않아. 캐릭터가 늘어나는 건 속편의 법칙이야. 전편에 비해 새로운 것을 제시해줘야 하니까. 그리고 캐릭터들이 신화적이어서 호소력도 커. 울버린은 늑대인간, 로그는 흡혈귀와 닮았고, 매그니토가 불을 다루는 파이로의 라이터를 빼앗았다가 돌려주는 장면은 신과 프로메테우스의 관계를 연상시키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 나오는 장면 같은 뉘앙스가 있어.
심=그래서 캐릭터의 천지창조라도 했다는 거야? ‘엑스맨 2’에서는 문제가 너무 쉽게 해결돼서 내러티브를 소모해버려. 그냥 돌연변이들의 묘기행진이야. 이 영화가 ‘피카추’랑 뭐가 달라?
남=어른들은 ‘피카추’의 수많은 등장인물을 산만하게 느끼지만 아이들은 다 파악해. 우리가 단선적 내러티브에 익숙해있기 때문에 캐릭터의 특징이 주가 되는 새로운 내러티브가 낯설어 보이는 것일 뿐이야.
심영섭
싱어 감독에도 불만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보인 압축된 연출미 실종 스펙터클의 나열뿐
심=‘엑스맨’ 1편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매그니토와 사비에 박사의 성격이었잖아. 사비에 박사는 흑백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주장했던 마틴 루서 킹, 매그니토는 폭력적 해결을 주장했던 말콤 엑스를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었지. 그런데 2편에서 두 사람이 더 큰 악당에 맞서기 위해 연대하는데 그 더 큰 악당이라는 자가 입체적이지 않아. 그냥 선, 악으로 시시하게 갈라져 버린다고.
남=갈등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사람은 적대적인 반면 어떤 사람은 포용하는 입장을 취한다는 것은 마틴 루서 킹과 말콤 엑스를 떠올리기 이전에 그리스 비극에서도 캐릭터의 틀로 자주 쓰였던 구도야. 특성과 살아온 과거에 따라 사람들이 억압과 타자에 대해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원형적인 이야기라고. 그렇게 원형적인 캐릭터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거지. 그리고 마틴 루서 킹, 말콤 엑스처럼 컨텍스트적인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가 재미삼아 보면 그만인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거지.텍스트 측면에서 마틴 루터 킹, 말콤 엑스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영화가 재미삼아 보면 그만인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거지.
심=그래요.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면서도 자기정체성을 의심하지 않았던 슈퍼맨보다야 낫지. 게다가 뛰어난 능력을 가졌어도 소외될 수 있다는 설정은 흥미로워. ‘엑스맨 2’에서 아이스맨이 돌연변이라고 고백하니까 부모가 “너,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은 해봤니?” 하고 묻잖아. 동성애자들이 커밍아웃할 때의 반응을 연상시키는데, 그처럼 사람들의 편견, 타자에 대한 불합리한 시선을 풍자하는 측면은 있어.
남=그래. 당신도 이 영화의 좋은 면을 인정하는 거네.
심=모든 판타지 영화는 사회상을 담기 마련이야. 50년대 ‘슈퍼맨’은 냉전시대의 미국식 낙관주의를 그렸고 ‘배트맨’은 고도로 자본주의화된 미국을 그렸지. ‘엑스맨 2’는 전쟁으로 분열된 미국에서 매파와 비둘기파의 싸움을 은유하고. 하지만 그 방식이 유치해. ‘배트맨’은 고담 시티를 시각화하는 방식으로 사회상을 드러냈지만 ‘엑스맨 2’에는 그런 면이 없어. 그저 컴퓨터 그래픽(CG)으로 뒤범벅됐을 뿐이지.
남=아날로그 방식의 영화에 대한 향수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 아냐? 그러면 객관적 입장에 서긴 어려워. CG를 구사하는 목적은 시각적 쾌감의 제공인데 ‘엑스맨 2’에서는 그게 완벽하잖아. 그게 또 속편을 낳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주요 전략인 거고.
심=아니야. 속편의 단 하나의 규칙은 전편보다 더 센 무언가가 나와야 된다는 거야.
남=‘엑스맨 2’의 액션은 1편보다 세잖아.
심=나는 질적 팽창을 말하는 거야. ‘터미네이터 2’에서 액체 금속 로봇은 폭력의 양적 팽창이 아니라 악몽의 질적 팽창이라고. ‘엑스맨 2’도 스톰이 태풍을 20개씩 일으키고, 그런 식의 양적 팽창 말고 질적 팽창을 했어야지.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연출도 못마땅해. 그의 연출은 ‘유주얼 서스펙트’처럼 압축된 서스펜스가 특징이야. 그런데 ‘엑스맨 2’는 늘어진 스펙터클의 연속일 뿐이야. 감독으로서도 퇴보한 거지.
남=블록버스터 영화의 속성상 감독 개인적 취향으로 모험을 걸 수는 없어. 물론 ‘에이리언’처럼 예외적 경우도 있지만. 브라이언 싱어 감독도 자신의 특성을 마음대로 구사하기 어려웠을 거야.
심=블록버스터를 배려하기 위해 감독이 실력을 다 발휘하지 않았다?
남=뭐, 못한 것일 수도 있고.
심=결국 브라이언 싱어를 할리우드가 잡아먹은 거네.
남=할리우드야 말로 거대한 로그야. 그런 점에서 ‘매트릭스 2’는 어떨까? 1편의 충격과 경이감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심=봐야 알지. 다음 번엔 ‘매트릭스 2’로 붙어봐?
정리=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토론 관전기▼
‘엑스맨 2’를 이야기하던 부부의 대화는 태어난 지 10개월 된 딸 유진양의 흉터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졌다.
혼자 기어가다 뜨거운 물에 팔을 데인 딸 걱정을 하는 아내의 마음을 달래느라 남 교수가 ‘썰렁한’ 농을 건넨다.
남=유진이도 ‘엑스맨 2’에서 순간 이동하는 돌연변이 같은 능력을 가졌나봐. 1초 사이에 기어서 순간 이동을 해버리잖아. 허허, 참….
심=(듣는 둥 마는 둥) 흉터가 남을 텐데 어쩌면 좋아. 하필이면 아빠가 학교 간 사이에 내가 보던 날 그랬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남=맞아. 내가 유진이를 챙겼어야 하는데…. (갑자기 생각난 듯) 유진이가 말문이 트일 때 아빠를 먼저 부른 것 알지? 역시 조기 교육의 효과가 있다니까.
심=(더 화가 나는 듯) 글쎄, 그 계집애가 내가 낳아준 것도 모르고 그럴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