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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韓派 네트워크]유럽…"일본은 잘 알지만 한국은…"

입력 | 2003-05-14 18:58:00


《“문화 차이에 따른 음식 습관을 비난하는 것은 유치하다.” 2001년 가을 한국의 ‘보신탕 문화’가 유럽 언론의 집중타를 맞았을 때 한국을 자주 방문했던 프랑스 문명 비평가 기 소르망은 이렇게 한국을 변호했다. 프랑스 지성의 한 사람인 기 소르망의 발언은 당시 큰 힘이 됐다는 게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과 교민 사회의 평가다. 문제는 유럽에 이런 지한파가 드물다는 점이다. 이라크전쟁 전 유럽 언론에는 미국이 북한이 아닌 이라크를 치는 데 의구심을 표시하는 기사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었다. 대량살상무기 보유가 불확실한 이라크보다는 보유가 확실한 북한이 더 위험하다는 논지였다. 미국이 북한을 칠 경우 남쪽이 겪을 고통까지 ‘배려’한 기사는 없었다. 그만큼 한국과 유럽은 물리적 거리 못지않게 심리적 거리 또한 멀다.》

▼지한파 실태▼

일본은 일찍이 19세기부터 유럽에 문화가 널리 소개되면서 지일파(知日派)를 넘어 ‘열광적인’ 친일파 인사들이 많다.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스스로 “일본을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말하는 대표적인 친일파다. 그는 일본 방문 때 시간을 쪼개 스모(일본씨름)를 관람하는 등 일본문화나 스포츠에도 일가견이 있다.

▼연재물 목록▼

- 중국…유력인사 드물어
- 일본…"친목 넘어 정책교류"
- 미국…공화당 인맥 부실

한국은 어떤가. 아직은 유럽인들에게 한국은 머나먼 ‘신비의 나라’에 불과하다. 때문에 유럽의 지한파는 한국 문화에 매료된 학자나 혼맥(婚脈) 등을 통해 한국과 연을 맺게 된 사람이 대부분. 국익과 연관이 큰 정치 경제 분야의 지한파는 드물다. 정계에서는 대한(對韓) 의원친선협회장, 재계에서는 한국과 거래가 있는 사람이 전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극소수 인사가 한국을 알리기 위해 뛰고 있는 형편이다.

▼소수의 활동▼

프랑스 하원의원인 앙드레 상티니 한-프랑스의원친선협회장은 자신이 시장으로 있는 파리 근교 이시레물리노시(市)에 한국 화가 모임인 ‘소나무회’를 유치, 지원하고 있다. 상원의 한-프랑스의원친선협회장을 지낸 알랭 랑베르 예산부 장관은 지한파 가운데서 현 정부 내 최고위직.

지난해 가을과 올초 프랑스에 한국영화 열풍이 분 것도 샤를 테송 카이예 뒤 시네마 편집장과 피에르 리시앙 평론가 등 프랑스 영화계 실력자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영국은 북아일랜드 장관을 지낸 피터 만델슨 노동당 의원이 지한파 실력자로 꼽힌다. 토니 블레어 총리의 측근으로 지난해 말 한국을 방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에게 블레어 총리의 친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야당인 보수당에서는 한영(韓英)의원친선협회장을 지낸 7선의 존 스탠리 의원이 알려진 지한 인사.

남북한을 모두 방문했던 존 치프먼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소장과 아담 워드 IISS 아시아 연구부장은 영국 정부의 대 한반도 정책에 영향력이 높은 인물로 평가된다. 민간 부문에서는 멜빌 게스트 등이 이끄는 한영포럼이 한영 우호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디 차이트지 발행인을 지낸 언론인 테오 좀머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한국통으로 꼽힌다.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은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과 작곡가 윤이상(尹伊桑)씨의 구명운동에 간여했었다. 뮌헨대학의 코트프리트 킨더만, 트리어대학의 한스 마울 교수도 빼놓을 수 없다.

▼육성 대책▼

2월 프랑스 정부 초청으로 프랑스를 다녀간 한나라당 박진(朴振) 의원은 “나를 담당한 운전사가 ‘15년째 (외국 초청 인사의 차를 운전하는)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해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해에도 민주당 추미애(秋美愛) 의원을 초청하는 등 세계 전역의 젊은 정치인들을 초청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주프랑스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프랑스 정부와 민간의 각급 기관은 자체적으로 각국 인사 초청 프로그램을 운영, 체계적으로 지불파(知佛派)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관련 정보와 자료를 충분히 제공하는 것은 지한파 육성의 기본이다. 한국에 관심 있는 많은 유럽 인사들은 “한국 관련 영문 불문 자료를 얻기가 너무 힘들다”고 불평한다.

장재룡(張在龍) 주 프랑스 한국대사는 “유럽에 지한파가 부족한 것은 그동안 한국이 미국 일본에 치중한 나머지 유럽에 투자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며 “한국이 세계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조직적인 유럽 지한파 육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한국정부 정보제공에 너무 폐쇄적"▼

“80년대 초 중국 문제를 전공하면서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 개혁의 역동성과 분단의 고통이라는 두개의 이미지가 충돌하는 한국은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프랑수아 고드망 프랑스국제관계연구소(IFRI) 아시아센터 소장(54·사진)은 한국과의 ‘첫 경험’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나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그는 중국 및 동북아 정치 경제에 관해 프랑스 내 최고 권위자 중 한사람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라크전쟁이 북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이라크의 패배는 북한의 ‘핵 도박’과 이를 보는 국제사회의 시각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라크와는 다르다. 아무리 무기를 많이 갖고 있다 해도 북한의 기본자세는 방어적이다.”

―한국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충고한다면….

“역대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은 사실상 아무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북한이 미국하고만 상대하려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불안한 통일보다는 안정을 바라는 것이 한국 내 지배적인 여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돼 있다.”

―유럽에는 지한파가 별로 없는데….

“유럽에서는 북한은 괴물이고 햇볕정책은 좋은 것으로 여긴다. 지한파의 역할은 한반도 문제가 흑백논리처럼 단순하지 않고, 남북한이 복잡하고 불안한 균형상태에 있다는 점을 알리는 것이다. 지한파를 늘리려면 한국 정부는 남북한에 대해 더 많이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한국처럼 개방된 사회가 왜 그렇게 정보 제공에는 폐쇄적인지 모르겠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