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 무역환경을 둘러싼 문제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이슈는 선진국들이 자국의 환경기준을 근거로 외국상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이른바 비관세 무역장벽이다. 당장 유럽연합(EU)은 2006년부터 가전제품에 대해 납 수은 등 유해물질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대체물질 사용을 의무화했다. 조사에 따르면 이러한 환경규제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VCR 1개 품목에서만 대체물질 개발과 생산시설 교체 등으로 1조원의 추가비용이 들어간다고 한다.
환경규제에 따른 수출 피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것은 일본 소니사 ‘플레이스테이션’의 사례다. 2001년 12월 네덜란드를 통해 유럽시장에 판매될 예정이었던 플레이스테이션 130만대와 부품 80만개에 대한 선적이, 제품에 포함된 카드뮴이 기준치보다 높다는 이유로 전면 중단됐다. 소니사는 이 사건으로 무려 1억6000만달러 상당의 금전적 손해를 입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01년도 대(對)EU 수출의 70%가 환경규제 대상 품목이었고, 이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규제를 뛰어넘지 못하면 반도체, 자동차, 가전 등 한국의 주요 수출품 전반에 걸쳐 큰 타격이 올 것이 분명하다.
국내 기업들이 이러한 환경규제 변화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유일한 길은 ‘지속가능한 생산’, 즉 청정생산 체제로 생산체계를 전환시키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를 충족해야 할 것이다.
우선, 기업의 환경경영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기업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첫걸음은 바로 최고경영자(CEO) 스스로가 환경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식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영업실적만으로 기업을 평가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기업가치 평가에 환경성과 사회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둘째, 제품설계 단계에서부터 생산, 수송, 사용, 재활용, 재사용 및 폐기까지의 전 과정에 청정생산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자원을 보전하고 원가를 절감해야 한다. 특히 전 과정 평가(LCA)를 활용한 환경친화적 제품설계는 기업뿐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도 전략적인 지원이 필요한 분야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청정생산기술을 적극 개발해야 한다. 전문가들에 따라 의견이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국내의 청정생산기술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적게는 4∼5년, 많게는 10년 이상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이렇듯 청정생산 관련 기술개발에 뒤처지면 결국 선진국의 기술에 종속될 수밖에 없고, 환경규제 장벽 이전에 기술 장벽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업자원부에서 청정생산기술사업을 통해 기업의 청정생산기술 개발 및 도입, 환경경영 기반조성 및 체제구축을 위한 지원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기업의 관심은 부족한 편이다.미국의 다국적 기업인 듀폰이나 다우케미컬에서는 청정생산을 도입해 오염물질 발생을 40∼60% 줄이고 원가를 절감했으며, 지금도 이러한 활동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제록스, 제너럴모터스(GM), 이스트만코닥, 마쓰시타 등 세계 일류기업들이 세계시장을 꾸준히 점유하는 것은 품질 외에도 이러한 환경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한국 기업들도 이러한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21세기의 ‘지속가능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게 될 것이다.
주덕영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