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파 프롬 헤븐’은 당시 금기시됐던 동성애나 인종 갈등을 진지한 러브 스토리의 소재로 삼았다. 사진제공 프리비젼
‘파 프롬 헤븐 (Far From Heaven)'은 기묘한 영화다. 이 영화만큼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장식적 스타일과 파격적 소재가 결합되어 비탄어린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작품도 드물다.
1957년 미국 코네티컷.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한 단풍잎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집 앞에 날렵한 차가 미끄러져 들어오고, 화사한 차림의 주부 캐시 (줄리안 무어)가 나타난다.
그의 남편 프랭크 (데니스 퀘이드)는 성공한 사업가이며 아이들은 사랑스럽다. 지역 신문 기자가 취재를 올 정도로 백인 상류층 사회에서도 부러움을 자아내는 ‘완벽한 가족’이다.
그러나 캐시의 행복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남편 프랭크의 고백으로 산산조각이 난다. 마음 둘 곳 없던 캐시는 새로 온 흑인 정원사 레이몬드(데니스 헤이스버트)와 이야기하며 위안을 얻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백인이 흑인과 같은 차를 탈 수도 없던 시절, 동네에는 추문이 번져가고 급기야 레이몬드의 딸이 백인 소년들로부터 린치를 당한다.
이 영화의 세트 디자인, 화사한 옷들과 헤어스타일, 바로크 양식의 인테리어, 카메라의 감상적 앵글과 숨죽여 우는 듯한 엘머 번스타인의 음악은 50년대 미국의 최루성 멜로영화 스타일 그대로다.
그러나 토드 헤인즈 감독은 ‘파 프롬 헤븐’에서 50년대 멜로 형식을 되살리면서도 그 영화들이 침묵하거나 암시에 그치고 말았던 성적 정체성과 인종 갈등을 전면에 드러낸다. 이 영화는 곱고 감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세트 안에서 무겁고 진지한 러브스토리를 들려준다. 이 기묘한 부조화가 오히려 감정을 고조시킨다.
‘파 프롬 헤븐’은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영화다. 영화 미학의 실험으로 볼 수도 있고, 낯선 대상에 대한 편견과 허위의식을 폭로하며, 현대인의 자기만족적 안정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도 드러낸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파 프롬 헤븐’은 진심으로 괴로워하고 사랑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남편의 고백과 흑인 레이몬드에 대한 사랑 등을 겪으며 캐시는 그저 친절하고 상냥한 귀부인을 뛰어 넘어 다른 사람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갖는 자아를 발견한다. 영화 마지막, 캐시의 수중에 남은 돈은 겨우 60달러. 남편은 그녀를 떠났고 새로 찾아온 사랑도 사회적 통념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떠났다. 캐시는 그들의 선택을 모두 존중하며 돌아선다.
‘파 프롬 헤븐’은 이처럼 모든 것을 잃고 모욕을 감수하면서도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던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은 제스처만으로도 감정의 파동을 자아내는 줄리안 무어를 비롯해 출연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뛰어나다.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 12세이상 관람가. 23일 개봉.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