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봄 여름 패션쇼에서 돌체 앤 가바나가 선보인 의상. 남성의 여성적인 면을 표현했다. 사진제공 시공사
◇20세기 패션/밸러리 멘데스 등 지음 김정은 옮김/329쪽 1만5000원 시공사
1926년 샤넬은 ‘작은 검정 드레스’라는 이브닝드레스를 내놓았다. 미국판 ‘보그’지에 ‘전세계가 입게 될 의상’이라고 소개된 이 옷은 천대받던 검은색이 우아하고 유혹적인 색상임을 입증한 전설적인 옷이 됐다. 이후 검정색 옷은 우아함의 상징이 됐다.
이 책은 1900년대 S자 실루엣(코르셋으로 허리를 꽉 조이고 가슴과 엉덩이를 풍만하게 보이게 하는 패션)부터 1990년대 범스터(엉덩이가 노출될 정도로 깊이 판 바지)까지 20세기 패션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20세기 전체를 9개의 시기로 분류해 각 시기의 특징과 경향, 주요 패션 디자이너와 모델 등을 다양하게 소개했다. 옷뿐만 아니라 액세서리, 화장, 머리모양, 신소재 개발 등 패션 전반에 대해 폭넓게 접근했다.
20세기 초 패션은 상류층 여성들이 부를 과시하는 상징이었다. 코르셋, 타조 깃털 모자 등 당시의 옷을 입고 벗는 것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의 한 장면처럼 하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힘겨운 일이었다.
하지만 1차 대전 후 샤넬과 파투가 주도한 ‘가르송 룩’은 직선적인 재단과 엉덩이까지 내려간 허리선이 특징적인 ‘소년 같은’ 스타일이었고 여성들은 기꺼이 코르셋을 벗어던졌다. 바지는 더 이상 별난 옷으로 취급받지 않았다.
할리우드 스타가 패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1930년대를 거쳐 1940년대는 전쟁의 영향으로 밀리터리 룩이 휩쓸었다. 1950년대는 전시의 실용적 옷에 대한 반발로 허리를 조이고 치마폭이 넓게 퍼지는 화려한 드레스, 즉 ‘뉴 룩’의 붐이 일었다.
1960년대에는 전후 경제적 풍요를 바탕으로 10대들이 주요 패션의 소비자로 등장하고 기존의 사회 계층이 붕괴하면서 패션의 대중화가 진행됐다. 히피 스타일의 반항적이고 실험적인 패션이 유행했다.
1970년대엔 펑크와 디스코룩, 1980년대 우먼파워를 상징하는 파워 슈트가 등장하는 등 패션은 대중매체 발달과 함께 전세계에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숨가쁘게 변화했다.
패션의 변화는 여성의 몸매관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초 미니스커트와 핫팬츠가 유행한 이후 여성은 가늘고 미끈한 다리를 가꾸기 위해 정성을 다해야 했다.
이 책은 여성 패션 못지않게 남성 패션도 비중 있게 다루는 등 20세기 패션의 모든 것을 담고 있지만 너무 많은 내용을 소개하다 보니 다소 산만하고 정리되지 않은 느낌을 주는 것이 흠이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