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지식키워드 100/강수택 외 68명 지음/548쪽 2만원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나노기술, 링크, 복잡계, 비정부기구, 사이보그, 선(禪), 시뮬라시옹….
최근 몇 년간 예전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띠거나, 훨씬 많은 사람의 이해와 관련을 맺거나, 의미 자체가 변화한 단어들이다. 여러 매체에서 자주 접하지만, 어휘에 깃든 의미의 양 자체가 날로 늘어나 제대로 뜻을 따라잡기가 간단치 않다.
이 책은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규정하면서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만드는 100가지 핵심 어휘를 정리 소개한다. 학자 칼럼니스트 등 다양한 필진이 각각의 키워드에 대해 2∼4쪽의 해설을 내놓고, 키워드마다 5종 내외의 ‘읽어야 할 책들’ 목록을 짤막한 리뷰와 함께 소개했다. 여기에 인접 지식분야로의 개념 확장을 위해 10종 내외의 ‘더 읽어야 할 책’ 목록도 덧붙였다.
100개의 장으로 분할된 ‘옴니버스’ 형식의 체제에도 불구하고 각 장의 해설 부분이 다루는 지식의 깊이는 녹록하지 않다. ‘대안교육’에서 생태론의 영향을, 마르크스주의의 전망에서 포스트구조주의와의 접목을 설명하고, 사이보그(인조인간)와 안드로이드(정교하게 만들어진 로봇)의 차이점을 짚어내거나, ‘sex’의 어원에서 나눔(-sect-)이라는 의미소(意味素)의 그림자를 짚어내는 지식여행은 수험용 또는 상식퀴즈 준비용 서적과 분명 다른 층위의 만족을 제공한다.
해설 부분의 서술방식이 균일하지 않은 것은 단점이자 장점도 된다. ‘나노기술’에서는 사전식 개념정의가, ‘뉴 에이지’에서는 역사적 배경이, ‘중국’에서는 앞으로의 전망, ‘여행’에서는 주관적 성찰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은 필자 각자의 판단에 의한 융통성 있는 접근의 결과이다. 아쉽게도 일부 키워드에서는 이런 ‘융통성’이 발휘되지 않는다.
100개 키워드 중 지리상의 개념으로 ‘미국’과 함께 ‘중국’ ‘인디아’ ‘중남미’ 만이 꼽힌 점은 사뭇 시사적이다(회교권은 ‘이슬람’이라는 종교상의 개념으로 소개되며 ‘아프리카’는 들어 있지 않다). ‘책’과 ‘독서’, ‘복잡계’와 ‘카오스’ 등 일부 키워드에서는 개념정리나 추천도서가 상당부분 겹친다. 키워드 중 하나로 ‘북 디자인’을 꼽은 것은 책이 가진 ‘특권’을 필요 이상 용인해준 결과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사고의 범위를 빠른 속도로 넓히고자 하는 대학 새내기나 예비 사회 초년생에게도 유용할 듯하다’고 소개한다고 해서 불필요하게 이 책을 깎아내리는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제값을 발휘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 지식의 전문화 심층화와 함께 정보량이 폭증하는 시대에 사고의 균형을 갖추고 시대의 풍향을 제때 따라잡으려는 호기심 왕성한 지식의 탐구자들이 그들이다. 추천도서 목록을 어느 정도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값’은 달라질 것이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