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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침체 활로찾기 고심]美-日-EU '환율전쟁'

입력 | 2003-05-16 18:58:00


세계경제가 디플레이션 초입(初入)에 들어섰다는 경고가 잇따르면서 미국 일본 유럽 등 3대 경제권 모두 비상이 걸렸다. 디플레를 극복하기 위해 금리를 더 낮추기도 어렵고 재정지출을 늘리기도 힘들어 각국은 마지막 남은 경기조절수단인 환율에 매달리고 있다. 금리가 사상 최저수준인 데다 저마다 재정적자가 심각한 탓이다. 다음달 초 ‘서방선진7개국(G7)+러시아’ 정상회담에 앞서 이미 ‘환율전쟁’이 소리 없이 진행 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위크(weak) 달러’ 용인정책=최근 세계경제의 교란은 미 달러화의 약세가 기폭제였다. 이미 기록적인 적자를 보이는 미 재정수지가 이라크 전비(戰費)지출의 압박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일고 있는 가운데 최근 존 스노 미 재무장관의 ‘달러화 약세 용인’ 발언이 더해졌다.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달러당 120엔대를 유지하던 환율은 이달 들어 빠른 속도로 하락(엔화가치 상승), 15일 도쿄 외환시장에서는 115엔 선까지 떨어졌다. 일본 은행이 40억~60억달러를 사들였지만 달러 매물을 소화해내기는 역부족.

미국은 1985년 플라자합의로 엔고(円高)에 합의, 달러화 가치의 하락을 부추겼으나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는 더 이상의 달러화 하락을 용인하지 않고 강한 달러정책으로 돌아섰다. 2001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강한 달러정책은 여전했다. 그러나 부시의 재선이 이라크 종전(終戰) 후 제1우선순위로 떠오르면서 달러약세→수출확대라는 전통적인 경기부양 카드를 꺼낸 것으로 풀이된다.

▽커지는 위기감=내수부진을 수출로 만회해온 일본경제는 엔화 강세가 계속되면 수출감소→기업수익성 악화→설비투자 부진으로 이어져 디플레이션 극복이 더욱 어려워진다. 16일 일본정부가 추정 발표한 올 1·4분기(1~3월) 경제성적표는 0%대 성장, 물가 역시 마이너스 대였다. 물건 값이 더 싸질 것으로 내다본 일본 소비자들은 더욱더 씀씀이를 줄이고 있어 디플레 압력은 더욱 커가고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의 강국들도 올 들어 일제히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유럽경제의 핵인 독일은 올 1·4분기에 0.2%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 6개월 연속 경기후퇴 중이다. 이런 가운데 유로화 가치가 최근 1년 새 무려 25%나 상승, 유럽의 수출기업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모건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로치의 말을 인용, “세계경제의 기관차인 미국이 저성장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아시아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충격, 유럽은 침체에 빠져들고 있다”며 “세계경제가 후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환율전쟁 조짐=미국의 외환시장 불개입을 달러화 하락을 용인하는 신호로 해석한 일본과 유럽연합(EU)은 엔화와 유로화 가치를 떨어뜨릴 묘안을 짜내느라 고심하고 있다. 일본의 외환 전문가들은 장기불황의 늪에 빠진 일본 엔화의 가치가 오르는 것이 ‘비경제적’ 요인 탓으로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6일(현지시간) 프랑스 도빌에서 열리는 선진국 재무장관 회담에서 환율문제가 주요 안건으로 논의될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미국은 “이번 회담은 ‘세계경제의 성장촉진’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공언, 환율이 도마에 오르는 것을 경계하는 눈치다.

유럽중앙은행도 역내 수출기업들의 빗발치는 요구에 현재 2.5%인 기준금리를 내달 중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간 금리격차가 커진 것이 국제 투자자금의 유럽유입 현상을 불러와 유로화 가치상승을 불러왔다는 판단 때문이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