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정 교수는 후배 의사와 간호사, 방사선사 등 40여명의 팀워크 덕분에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일반인들은 세계 최고의 과학전문지라고 하면 ‘네이처’와 ‘사이언스’를 떠올리지만 의학자들은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을 이보다 더 값있게 친다.
올 4월까지 국내의 연구 결과가 NEJM에 실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 벽을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박승정 교수(49)가 넘었다. 박 교수는 이 학술지에 ‘협심증(狹心症) 환자의 시술 탁솔 코팅 특수관 치료법의 효과’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임상 연구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는 것이 기초 의학보다 수 십 배 어렵기 때문에 의료계에서는 “노벨의학상을 받은 만큼 값진 쾌거”라고 평가하고 있다.
박 교수는 매년 10∼15건의 논문을 국제적 학술지에 발표해 왔고 96년부터 매년 ‘국제혈관확장술 심포지엄’을 열고 있어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의사다.
그는 또 ‘첫 성공’의 연속 행진을 해왔다. 89년 심장 혈액이 섞이지 않고 좌심방에서 좌심실로 흐르도록 하는 승모판이 좁아져서 혈액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는 ‘승모판 협심증’ 환자에게 다리 동맥을 통해 풍선을 집어넣어 넓혀주는 시술에, 91년에는 협심증 환자에게 다리 동맥을 통해 금속망을 넣어 막힌 심장동맥을 넓혀주는 시술에 각각 국내 처음으로 성공했다. 그는 97년 당시까지 외과에서 우회로를 만드는 수술로만 치료할 수 있다고 여긴 특수한 협심증의 치료에 그물망 시술을 도입해 교과서를 다시 쓰게 했다.
박 교수는 자신이 최고 경지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을 두 가지 행운 덕택으로 돌린다.
첫째, 20여 년 전부터 심장내과에서 진단 위주에서 치료를 병행하는 쪽으로 흐름이 바뀌었는데 자신의 나이가 그 흐름을 받아들이기에 가장 좋았다는 것.
둘째, 열정적인 후배 의사나 간호사 등과 함께 팀을 구성할 수 있었다는 것. 박 교수의 직속 팀원 40여명은 모두 언제라도 환자가 생기면 5분 안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다. 물론 박 교수 자신도 병원 바로 옆에 살고 있다.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이 협심증으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도대체 협심증이란 무엇인가.
“인체의 엔진 격인 심장은 주먹만 한 근육덩어리다. 심장은 끊임없이 뛰면서 온몸 구석구석에 혈액을 보낸다. 심장은 자기 자신의 운동을 위해서도 혈액이 필요한데 심장근육에 혈액을 보내는 혈관이 바로 심장동맥이다. 심장을 뒤집어보면 세 개의 심장동맥이 왕관처럼 생겼다고 해서 ‘관상(冠狀)동맥’이라고 불렀지만 용어가 어려워 요즘에는 심장동맥이라고 부른다. 이 심장동맥이 좁아져서 심장에 혈액이 제대로 가지 않는 것이 협심증이다. 협심증은 주로 동맥 혈관에 콜레스테롤을 비롯한 여러 물질이 쌓여 엉기면서 딱딱하게 굳는 동맥경화증의 결과로 나타난다. 심장동맥의 안지름이 50% 이상 좁아지면 협심증이고 완전히 막히면 심근경색이다. 심근경색증일 경우 40%가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숨진다.”
―협심증의 증세는.
“종류에 따라 다르다. ‘안정형 협심증’은 운동량이 갑자기 많아질 때 생긴다. 주로 가슴 한복판이 아프며 팔이나 목에 통증이 오기도 한다. 통증의 양상은 ‘짓누른다’ ‘빠개진다’ ‘답답하다’ ‘벌어지는 것 같다’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어떤 사람은 가슴에 전혀 통증이 없으면서 팔이나 목이 아프기도 한다. 통증은 쉬면 대략 2∼3분 뒤 사라진다. 이를 방치하면 ‘불안정형 협심증’이 생기며 시도 때도 없이 통증이 온다. 한국과 일본에는 ‘변이형 협심증’이라는 특수한 협심증 환자가 많다. 이는 흡연 폭음 등과 관련이 있으며 새벽 또는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통증을 호소하는 것이 특징이다. 고령의 노인이나 당뇨병 환자는 통증 없이 협심증이 진행되기도 한다. 만약 극심한 흉통이 20분 이상 진행되면 심근경색일 가능성이 크므로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
―협심증은 어떻게 치료하는가.
“증세가 가벼우면 약물로 치료한다. 조금 더 심하면 풍선확장술, 그물망시술 등의 내과적 시술을 받는다. 증세가 심한 경우 막힌 혈관 주위로 새 혈관을 만들어주는 외과 수술을 받아야 한다. 최근에는 내과에서 작은 다이아몬드로 심장동맥의 기름찌꺼기를 깎는 등의 치료법도 도입되고 있다.”
―협심증은 치료를 받아도 재발이 잘 된다는데….
“그렇다. 최근 10여년 동안 의사들은 재발률을 줄이는 데 매달려 왔다. 풍선확장술은 40∼50%가 몇 달 내에 재발한다. 혈관이 풍선을 누르면서 수축하고 혈관 내막이 부어오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풍선 대신에 금속 그물망을 넣는 시술을 했더니 혈관 수축은 줄었지만내막의 증식은 그대로였다. 다음으로 그물망 시술 뒤 혈관에 방사선을 쬐는 치료법을 썼더니 재발률이 20% 정도로 떨어졌다. 최근에는 그물망에 항암제 탁솔이나 면역억제제 라파마이신을 코팅하는 시술로 치료하고 있다. 우리 팀이 NEJM에 발표한 논문도 여기에 관한 것이다. 우리 팀의 치료에서는 재발률이 5% 정도에 불과했다.”
―협심증과 심근경색을 예방하려면?
“담배는 심장의 주적(主敵)이다. 돌연사를 피하려면 당장 끊어야 한다. 과음도 피해야 한다. 패스트푸드, 튀김 등 콜레스테롤이 많은 음식은 덜 먹는 것이 좋다. 비만이면 살을 빼야 하고 고혈압, 당뇨병 환자는 약을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 한국인들은 광적으로 보신음식에 매달리는데 흡연 과음등 해로운 일을 하지 않는 것이 건강에 훨씬 도움이 된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심장질환 분야 명의들▼
▽김성순(58)=부정맥에 대한 진단과 치료법을 국내에 소개하고 개발해 온 이 분야의 대가로 인공박동기 시술의 실력은 세계적이다. 대한순환기학회 이사장을 역임했고 현재 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병원장을 맡고 있다. 2000년과 2001년에는 평양을 방문, 현지 의료진에게 심혈관질환의 치료법에 가르치기도 했다.
▽이방헌(59)=고혈압 환자의 혈압을 직접 재면서 가족이나 친구처럼 진료하는 인간애로 유명하다. 대한고혈압학회 이사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심초음파학회 회장, 대한고혈압학회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10월에 아태고혈압학회 회장에 취임한다. 2001년부터 매주 빠짐없이 개원의를 대상으로 고혈압 강의를 하고 있다.
▽배종화(62)=1980년대 초 심장질환의 진단에 필수적인 도플러 심초음파 검사법을 처음 도입해 보급했다. 한국심초음파학회를 창립했으며 91년 제4차 아태심초음파학회 및 2001년 세계심초음파학회 조직위원장으로 서울에서 성공적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대한순환기학회 회장 및 이사장을 역임했고 대한고혈압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조승연(58)=심장동맥질환과 심장판막증 질환의 권위자. 1985년에는 국내 최초로 관상동맥 환자에게 풍선확장술을 성공시켰다. 2001년 국민고혈압사업단 부단장을 맡아 고혈압의 위험과 예방법 등을 각종 행사를 통해 활발히 전파해 왔다. 대한순환기학회 학술이사, 한국항공우주의학협회 이사 등을 역임.
▽장양수(46)=심장동맥 질환자의 좁아진 혈관을 넓히는 데 쓰이는 ‘스텐트’를 국내 독자기술로 개발하여 특허청에서 수상하는 특허기술대상인 ‘세종대왕상’을 수상했다. 최근 희귀병인 버거병을 자신이 개발한 ‘자가조혈모세포이식을 통한 신 치료법’으로 치료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김영훈(45)=부정맥 분야의 차세대 리더로 꼽힌다. 2000년 3차원 진단기기를 도입, 부정맥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 치료함으로써 기존 치료법보다 치료율을 25% 이상 올렸다. 심장박동이 불규칙해 돌연사의 위험이 있는 환자 20여명에게 ‘이식형 자동제세동기’를 삽입해 생명을 연장시켰다.
▽안혁(51)=심장판막수술과 대동맥 수술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판막을 인공판막으로 바꾸지 않고 성형술로 치료하는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대동맥 수술에서도 부작용을 줄인 여러 치료법을 도입했다. 환자들에게 친절하고 꼼꼼하게 설명해 준다.
▽이영탁(48)=96년부터 인공심폐기를 가동하지 않고 시행하는 심박동우회술, 일명 무펌프 관상동맥우회술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매년 300여건의 관상동맥우회술 중 80%를 이 방법으로 수술해 99.5%의 성공률을 기록하고 있다. 매년 20여명에게 6∼8cm만 절개하고 수술하는 ‘최소침습적 관상동맥우회술’을 시행하고 있다.
▽송명근(52)=92년 국내 최초로 심장이식 수술에 성공함으로써 이 분야의 최고 대가로 공인받고 있다. 86년 국내 최초로 선천 복합기형 심장병 환자의 수술에 성공했고 88년 건강한 사람의 판막을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에, 97년 인공심장을 이용한 심장이식에 성공했다. 수술 환자의 체온을 섭씨 11도까지 떨어뜨리는 ‘초저체온요법’을 개발해 환자의 장기 손상을 최소화했다.
▽김기봉(48)=94년 심방세동의 수술법인 ‘MAZE 치료법’을 국내 처음으로 시행했다. 98년에는 심장동맥 여러 곳이 막힌 환자를 인공심폐기 없이 수술했고 지금까지 이 방법으로 600여명을 수술했다. 이와 관련한 논문이 3월 미국에서 열린 국제흉부외과의사학회(CTT)에서 최우수 발표 논문으로 선정됐다.
▽장병철(50)=1만여 건의 심장혈관 수술 실적을 갖고 있다. 국내 최초로 심장부정맥 수술에 성공했으며 심장판막질환의 뛰어난 수술실적을 세계심장판막학회에서 발표했다. 심장이식수술도 활발히 시행하고 있으며 2000년 7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에게 좌심실보조장치 이식술에 성공했다.
▼어떻게 뽑았나▼
성인 심장 질환 부문의 베스트 닥터로 순환기내과(심장내과)에서는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박승정 교수, 흉부외과에서는 서울대병원 안혁 교수가 선정됐다.
이는 전국 17개 대학병원의 심장내과 및 흉부외과 교수 77명에게 △자신의 가족이 심장 질환이 있으면 맡기고 싶고 △최근 3년 동안 진료 및 연구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의사를 5명씩 추천받아 집계한 결과다.
이번 조사에서는 막강한 ‘연세대 심장내과 파워’가 여실히 입증됐다. 김성순, 조승연, 장양수 교수 등 5명이 명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 사실 박승정 교수도 이 대학 출신이다. 박 교수는 “여러 면에서 대선배인 김성순 교수에게 못 미치지만 김 교수의 전공인 부정맥보다 환자가 많은 심장동맥질환을 보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추천을 받은 것 같다”고 겸손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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