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위원회(KBO) 홈페이지(www.koreabaseball.or.kr) 자유게시판은 국내에서 가장 큰 프로야구 장터다. 프로야구의 돌아가는 사정을 훤히 꿸 수 있다. 하루에도 수백 건의 의견이 올라오고 굴비가 줄줄이 엮이는 릴레이 논쟁이 벌어진다.
최근 이곳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이승엽의 홈런에 대한 색깔 논쟁이 1주일 넘게 수천 건이나 불을 뿜고 있었다. 이승엽을 깎아내리는 쪽의 의견은 △대구구장은 ‘초미니 구장’으로 △올해 15개 홈런중 대구에서만 13개를 쳤고 △잠실 사직 같은 큰 구장에선 치지 못해 진정한 홈런왕의 자격이 없다는 것.
그러고 보니 기자가 2주전 칼럼으로 공연히 ‘이승엽 논쟁’의 불씨를 제공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일부 네티즌은 기자에게 ‘안티 이승엽’이 아닌가라고 따졌다. 이들은 “지난해 이승엽은 잠실 19경기에서 7개의 홈런을 쳤다. 이를 전체 133경기로 환산하면 49개가 돼 지난해의 47개를 능가한다”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기자도 전적으로 수긍한다. 이승엽은 지난해뿐 아니라 해마다 어느 구장에서든 빨랫줄 같은 직선 홈런을 날린 국내 최고의 슬러거가 분명하다. 기자는 이승엽의 홈런을 폄하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위기에 빠진 프로야구를 살리기 위해 잠실 사직 문학 같은 큰 구장 펜스 길이를 줄이는 방안도 있지 않겠는가는 의견을 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때는 ‘안티 이승엽’이란 것도 있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KBO 게시판을 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정말 ‘안티 이승엽’이란 단체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실 이승엽은 누구보다 대구에서 홈런을 양산했다. 현재까지 283개 홈런 중 171개를 대구에서 쳤으니 60.4%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47개중 28개를 대구에서 쳤다. 하지만 그게 뭐가 그리 큰 문제일까. 장종훈은 지난해까지 327홈런 중 60.9%인 199개를 대전과 청주구장에서 쳤다. 오히려 이승엽을 능가한다.
야구는 수영이나 역도, 사격과는 다르다. 구장 크기도 중요하지만 상대 투수, 볼카운트, 주자 상황, 팀배팅 여부, 스코어, 팀순위, 후속타자, 심지어는 바람과 습도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승엽의 홈런을 논하려면 구장뿐 아니라 이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한다. 또 선수가 홈팬이 운집한 연고 구장에서 홈런을 양산하는 게 나쁠 것도 없다.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몇 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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