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탓일까? 감기철이 아닌데도 ‘감기 증상’을 호소하며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이들 중에는 꽃가루가 날리는 계절에 흔한 알레르기 비염 환자들도 많다. 콧물과 재채기가 주 증상인 알레르기 비염은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감기와는 종류가 다른 병이다. 감기는 바이러스가 몸 안에 침입해 들어와 코나 목 점막에 염증을 일으켜 콧물, 코막힘, 기침, 목이 따끔거리는 증상을 보이다가 수일 내에 저절로 치유되는 병이다.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치료는 합병증이 없는 한 대증요법, 즉 증상을 가라앉히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감기 뚝 떨어지게 주사 한 대 놓아달라고 조르는 환자나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항생제를 먹어야 하니 꼭 처방을 해달라고 ‘애원’하는 환자들을 볼 때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감기약은 대개 해열진통제, 진해거담제, 항히스타민제 등을 쓴다. 주사약은 먹는 약에 비해 약효가 조금 빠르게 나타나는 점 외에는 별 차이가 없다. 또 약효가 떨어지면 증상이 다시 나타나므로 완치될 때까지 투약을 계속해야 한다. 주사를 맞는다고 감기가 빨리 낫는 일은 결코 없다. 그런 경험담을 말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위약(僞藥) 효과’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자기암시가 강한 사람들 중 주사를 맞으면 감기가 떨어질 거라는 강한 믿음 때문에 실제 증상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다. 아니면 감기가 나을 때쯤 주사를 맞은 덕일 수도 있다.
항생제를 먹으면 감기가 빨리 나을 거란 믿음도 과거 감염성 질환이 창궐하던 시절에 ‘마이신’이 보여준 강력한 치유력을 경험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항생제는 박테리아 감염에만 효과를 보일 뿐 바이러스 감염에는 힘을 쓰지 못한다. 합병증 예방을 위해 항생제를 먹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감기 합병증으로는 부비동염(축농증), 중이염, 폐렴 등이 있는데 항생제를 미리 쓴다고 예방할 수 없다는 것이 의사들의 일반적 견해다. 오히려 내성균이 생겨 치료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물론 편도염이 심하거나 감기 합병증이 의심될 경우에는 빨리 병원을 찾아 적절한 항생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감기로 미열은 있을 수 있지만 38도 이상의 고열이 있으면 일단 합병증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또 증상이 일주일 이상 계속되는 경우에도 진찰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두통이 심하거나, 귀가 아프고 소리가 잘 안 들리거나, 콧물이 목 뒤로 넘어가는 증상이 계속 있어도 병원을 찾아야 한다. 노인이나 어린이, 만성질환자의 경우 합병증이 잘 생기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감기의 가장 확실한 치료는 충분히 쉬어 체내 면역기능이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이다. 물을 많이 마시고, 목이 따끔거릴 때에는 미지근한 소금물로 양치질을 하거나 뜨거운 차를 마시면 좋다.
일분일초를 다투며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감기는 황금 같은 시간을 빼앗아 가는 ‘시간 도둑’일 수 있다. 주사 한 대로 감기에서 빨리 벗어나 밀린 업무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감기약으로 증상을 억지로 눌러가며 몸을 혹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감기는 자신이 무리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신호일 수 있다. 약을 먹어가며 고생하기보다 오히려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로 삼아보면 어떨까?
박용우 성균관대 의대 강북삼성병원 교수·가정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