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재
Y는 아버지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립대 총장과 문교부 장관을 지낸 덕분에 온실 속에서 아쉬운 것 없이 자랐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세가 기울면서 5년 전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직했다. 당뇨로 심하게 고생하면서도 단 한 번 결근을 하지 않던 그는 지난 한식(寒食) 때 55세를 일기로 유명(幽明)을 달리했다. 그에게는 초등학교 5학년인 늦둥이 아들이 있었다. 그의 아들은 이렇게 생을 마감한 아버지를 가장 존경한다고 말한다. 끝까지 자신의 직분에 최선을 다한 Y의 삶이 어린 아들에게 남다른 의미와 감명을 주었던 것 같다.
이처럼 아버지는 자녀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모델’이다. 그러나 ‘장래에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을 점점 찾아보기 힘든 것이 요즘 세태다. 필자가 1950년대 후반 전남 보성군 득량면 득량남초등학교를 다닐 때, 아버지는 이 학교 육성회 회장이셨다. 그리고 마을에서 유일하게 구독한 신문이 동아일보였다. 아버지는 생전에 필자에게 ‘출필곡반필면(出必告反必面·밖에 나갈 때는 반드시 부모에게 아뢰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뵘)’하도록 했다. 방에 계신 아버지께 문턱 너머 마루에서 절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또 ‘남한테 덕을 준 것은 기억하지 말고, 덕을 본 것은 기억하라’는 말씀도 자주 해주셨다. 이런 말씀들은 내 인생에 늘 자양분이 되고 있다. 지금도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면 카리스마적 권위가 떠오르곤 한다.
요즘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아버지는 ‘집에 있는 사람(presence)’이 아니라 ‘집에 없는 사람(absence)’이 되어가고 있다.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아버지들이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15∼30분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오늘날 아이들이 주로 보고 듣는 사람은 어머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주로 훈육하는 사람 또한 어머니다. 부권상실은 모권강화와 등식관계가 성립된다. 그러나 엄마가 갖는 ‘인테그러티(integrity·신뢰할 수 있는 정직성)’가 담보된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세상의 남편들이여, 의무와 책임감이 더 많아진 아내에게 5월이 가기 전 카네이션을 달아주자.
이윤재 번역가·영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