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초 OB 투수코치 시절 계형철(오른쪽)의 투구폼을 지도하고 있는 김성근 전 LG 감독. 계형철은 이후 김 전 감독이 옮기는 팀마다 투수코치로 따라다니며 제자이자 동료로서 ‘김성근 사단’의 핵심이 됐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임호균 각서’를 쓴 김성근 전 태평양 감독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90년 시즌을 5위로 마친 그의 앞에는 중도 해임이란 서슬 퍼런 ‘부고장(訃告狀)’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즌 중 임호균을 배려한다는 것이 사장에겐 ‘감독이 각서를 지키기 위해 점수차가 크게 나 이기고 있는 경기에 임호균을 중간계투로 투입해 거저 승리를 주려 한다’고 왜곡된 채 보고됐다. 일부 프런트 직원의 악의에 찬 고자질이 한몫 단단히 했다.
“그때부터 아예 임호균을 쓰지 않았지. 당연히 5승은 안 됐고. 그래도 후회는 없었어. 구단에선 나의 충정을 알아주지 않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선수들의 눈빛이 변한 걸 알았거든.”
그랬다. 프로야구의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 중 한 명인 김성근의 인사포석 원칙은 단순 명료했다. 그가 지난해 12월 회갑연에서 수많은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한 말을 돌이켜보면 정답이 나온다.
“감독이기에 앞서 아버지의 입장에서 여러분과 가족의 인생을 책임지려 했지. 오야(지도자)는 새끼(선수)에게 무조건 봉사해야 돼. 여러분도 나중에 스승이 되면 한없이 주기만 해야지 만에 하나라도 받으려는 마음을 가지면 안 돼.”
그러나 이런 그도 언제나 구단에 대해선 할 말은 하고 넘어갔다. 10여년을 줄곧 옆에서 지켜본 필자의 입장에선 ‘별것도 아닌데 좀 타협도 하지. 지독한 영감쟁이’라는 생각이 골백번은 들 정도였다.
사실 프로야구 감독은 본지 인간포석 시리즈의 앞 편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박태준, 남덕우, 김정태, 강영훈씨에 비하면 진정한 최고경영자(CEO)는 아닐 터. 명문임을 자랑하는 일부 구단에선 감독을 회사로 치면 부장이나 팀장 정도로 여기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김성근은 매번 잘릴 걸 알면서도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나섰다. 선수가 감독보다 사장 눈치를 보고 있으면 백전백패라는 게 그의 지론. 89년 태평양 감독 계약 때는 옵션부터 걸었다. 그 첫 번째가 사장에게 선수와 코치를 개인적으로 만나지 말라는 것. 당시만 해도 구단 고위층이 선수단 미팅 때면 운동장에 나와 한바탕 훈시를 하고 가는 게 유행인 시절이었다.
“겨울 제주 전지훈련 캠프 때 선수 가족을 초청했는데 사장이 3분만 달라고 부탁을 하더군. 사장은 ‘내가 김 감독에게 3분을 허락받았다’는 말을 먼저 한 뒤에야 훈시를 할 수 있었지. 이게 다 선수단 운용에 있어선 사장보다 감독이 최고라는 걸 선수들이 느끼게 하기 위함이었지. 그때부터 선수들이 나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게 된 거야.”
김성근은 위를 향해선 직격탄을 날렸지만 구단에 손을 벌리지 않은 채 모든 걸 자신이 도맡아 하는 ‘무한책임 경영’을 했다. 또 밑으로는 깊은 배려와 감동으로 선수들을 장악했다. 그러다 보니 세간이 남는 게 없을 정도였다. 60년대 말 첫 감독을 맡았던 마산상고와 충암고 시절엔 집 한 채씩이 그냥 날아갔다. 학교측의 긴축 재정에 맞서 선수들의 훈련비를 자비로 끌어댔기 때문.
“39년 전 대한민국에 영구 귀국을 하던 날 비행기 안에서 철들고 첫 눈물을 흘렸지. 혼자 남았다는 외로움이 엄습했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지. 고국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끝이라는 생각이 들자 오기에 가까운 용기가 생기더군.”
한때 국가대표 왼손투수를 지냈고 기업은행 시절 한 시즌 20승 이상을 올리기도 했지만 불의의 부상으로 일찍 선수생활을 마감해야 했던 그였다. 이런 외로움의 기억은 지도자의 열정으로 되살아났다. 처음엔 모두가 그를 ‘반쪽발이’라고 불렀지만 그의 자상한 속마음을 알게 된 동료와 선수들은 하나둘, 나중에는 떼를 지어 그의 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내가 어려운 처지를 겪다 보니 야구 못하는 선수에게 더 눈길이 가더라고. 사람은 태어나면서 적어도 한 가지 재능은 타고나. 프로팀에 들어올 정도라면 뭔가 장점이 있지. 정 안될 선수라도 끝까지 보살펴주면 사람에 대한 고마움과 야구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갖게 되거든. 야구 감독은 좋은 선수를 뽑고 키운 다음에 적절히 배치해 우승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1등이 꼭 최선은 아닐 거야.”(계속)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