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럽 사무실에서 직원들에게 사업구상을 설명하는 이수영 사장. 오른쪽은 이 사장이 미국 뉴욕대 재학시절인 94년 공연하는 모습. 원대연기자·사진제공 이수영씨
《'벤처 갑부가 된 발레리나.’ ‘38세 신데렐라의 대박.’
3D온라인 게임업체 웹젠의 최대주주인 이수영(李秀榮·37) 마이클럽 사장에게 따라붙기 시작한 수식어들이다.웹젠의 주식은 최근 무려 1434 대 1의 공모주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며 코스닥 시장의 황제주로 떠올랐다. 23일 등록 이후 주가가 증권가의 예상대로 9만원까지 뛰어오르면 웹젠의 최대주주인 이 사장은 340억원대의 평가차익을 보게 된다.그러나 17일 마이클럽 사무실에서 만난 이 사장은 의외로 심드렁했다. “돈을 어디에 쓸 거냐고요? 잘 모르겠는데요. 당장 현금으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정말 생각 안 해봤어요.”》
이 같은 ‘대박’은 로또 복권처럼 하루아침에 터진 것은 아니다. 이 사장은 웹젠의 창업 멤버이자 사장으로 2년5개월을 투자했다. 그동안 영업 활동을 위해 마셨다는 술만 “이 나이에 나만큼 퍼마신 여자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할 수준이란다.
말만 사장이지 소위 ‘얼굴 마담’은 아니었을까. 발레리나 출신에 미모의 미혼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짓궂게도 그런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과거사부터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일곱살짜리가 아무데서나 춤을 추어대는 것을 보고 부모님이 한국무용 학원에 보내주셨을 때만 해도 무용가가 될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연극과 웅변, 춤 등을 흉내 내기 좋아하는 말괄량이였지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작은 발레공연을 보고 난 뒤 발레리나가 되기로 결심했죠. 당시 백조와 관련된 만화책에도 심취해 있었거든요, 하하.”
입시를 1년 남겨놓고 신은 토슈즈. “지금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다”는 부모님의 반대가 무색하게 세종대 무용학과에 거뜬히 수석 합격했다. 당시에는 연극과 영화에도 출연하는 끼 많은 학생이었다고 한다. 이후 미국 ‘마사 그레이엄 무용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고 뉴욕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까지 마쳤다.
귀국 후 댄서 이수영의 고민은 “왜 예술가는 항상 배고플까”와 “시간강사로 출발해 교수로 이어지는 정해진 틀을 벗어날 수는 없을까”라는 것.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어강사, 방송사 공연리포터, 공연 프로그램 기획 등에 뛰어들었다. 발레를 소재로 여성용 게임을 만들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무턱대고 게임회사를 찾아가 사업 제안을 하기도 했다.
얼마 뒤 게임업체 미리내 소프트웨어에서 해외 마케팅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왔다. 이것이 게임 사업과의 첫 인연. 이 사장은 여기서 쌓은 경험과 지식이 웹젠의 운영에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수준이 떨어지는 게임을 미국 업체들에 소개했다가 ‘다시는 이런 제품 보내지 말라’는 경고문을 받는 아픈 경험도 했죠. 그래도 게임산업의 특성과 마케팅 전략 등을 체계적으로 공부해나갈 수 있는 기간이었어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작은 외국계 컨설팅 회사로 옮겨 기업금융을 익히고 있던 2000년 초. 지금의 웹젠 김남주 사장(33) 등 3명의 게임 개발자가 찾아왔다. 웹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회사 이름은 인터넷의 웹(web)과 선(禪)을 의미하는 ‘젠’을 붙여 이 사장이 직접 만들었다.
새로운 게임의 이름을 놓고 개발자들과 난상토론을 벌이던 중 튀어나온 ‘뮤’란 단어를 듣고 이 사장은 뮤 대륙을 떠올렸다. 1만 년 전에 태평양 한가운데로 가라앉은 것으로 알려진 전설의 대륙.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된 온라인 게임 ‘뮤’의 이름은 이렇게 결정됐다. ‘뮤’는 게임뿐 아니라 판타지 영화와 만화, 캐릭터 사업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 이름으로 제격이었다.
그러나 엔터테인먼트 산업 ‘뮤 대륙’ 건설의 꿈은 지금은 그의 손을 떠난 상태다. 지난해 9월 이 사장이 돌연 웹젠을 떠났기 때문. “왜 잘나가던 회사를 그만뒀느냐”는 질문에 이르자 이 사장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속사정은 있지만 말하기 곤란한 듯했다. 당시 정보기술(IT)업계에는 “이 사장이 경영권 분쟁에서 밀렸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당시 회사 관계자들과 이 사장 사이에 의견 충돌도 잦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가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 속도에 허덕이느라고 서로 신경이 날카로워졌고요. 회사의 발전 방향에 대해 의견이 많이 달랐다고만 이해해 주세요.”
이 사장에게는 요즘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새로 맡은 여성 전용 포털사이트 마이클럽닷컴을 굳건하게 일으켜 세우는 것. 그러나 이미 자리를 굳힌 포털업계의 강자들 사이에서 갈 길이 험난해 보인다.
“잘해야죠. 마이클럽의 기존 강점은 살리되 남성들도 끌어들일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할 거예요. 오프라인에서도 깜짝 놀랄 새로운 공간을 보여드릴 테니 기다려 보세요.”
일에 미쳐 결혼을 안 한다는 언론 보도는 거짓말 아니냐고 했더니 “아무리 바빠도 연애는 해야죠”라며 맞장구를 친다. 아직도 마음에 맞는 사람을 못 만났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 사장은 요즘도 가끔 재즈댄스 스튜디오를 찾아 몸을 푼다고 한다. “한때는 6개월마다 모은 돈을 다 쏟아 부어 공연을 무대에 올리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그의 자랑이다. 오늘의 이 사장을 있게 한 열정이 엿보였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이수영 사장은 ▼
-1966년 경남 마산 출생
-1984년 세종대 무용학과 수석 입학
-1990∼1992년 미국 ‘마사 그레이엄 무용학교’에서 2년간 장학금을 받음
-1992년 뉴욕대(NYU) 예술대학 입학
-1994년 예술학 석사(MFA) 학위 취득
-1996∼1998년 귀국 후 미리내 소프트웨어 해외 마케팅 과장으로 근무
-1998∼2000년 외국계 컨설팅 회사인 GMBR 국제금융부 부장으로 근무
-2000년 5월 웹젠 설립
-2002년 11월 마이클럽 사장 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