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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저편 320…명멸(明滅)(26)

입력 | 2003-05-20 18:48:00


1943년 5월29일 애투 수비대 옥쇄

애투섬 수비대는 5월12일 이후 지극히 곤란한 상황 하에서 수적으로 우세한 적에 대항하여 혈전을 계속하던 중 5월29일 밤 적의 주력부대에 최후의 철퇴를 가하여 황군의 진수를 발휘하고자 결의, 전력을 다하여 장렬한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후 통신이 두절, 전원이 옥쇄한 것으로 보인다. 부상으로 인하여 공격에 가담 할 수 없었던 자는 앞서 자결하였다. 우리 수비대는 2000여명이었으며 부대장은 육군대령 야마자키 야스요, 적은 특종 우수 장비를 갖춘 약 2만 병사였으며 5월28일까지 아군이 가한 손해는 6000에 달한다.

1943년 6월5일 야마모토 원수 국장야마모토 제독 전사, 애투 옥쇄 돌격, 그리고 끝내 야마모토 이소로쿠 원수를 보내는 날이 왔다. 장지에는 황공하옵게도 칙사 및 특사, 황족이 참례 예를 올렸으며 고위 관료를 비롯하여 온 나라가 애도와 통분의 마음에 흐르는 눈물을 금치 못하였고, 장지인 히비야의 초목조차 엎드려 애통해 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그 애통함 속에 잠류하는 것이 있으니, 치열하고 강인한 기상이여, 9년 전 도고 장군을 보냈던 같은 6월5일 ‘원수 해군 대장 정삼위대훈위공 일급 야마마토 이소로쿠지묘’라 쓰인 묘비가 남해 바닷바람과도 같은 솔바람이 부는 곳, 다마의 일각에 드높이 세워졌다. 그러나 죽어서도 우리와 함께하는 태평양의 수호신은 지금, 야마구치와 가라이 두 제독 애투의 용사들과 무슨 얘기를 나누고 계실까. 연도에 들끓은 오열은 영웅의 충정에 답하는 일념의 표현이었다. 정해진 국민 참례 시각 논두렁에서, 용광로 앞에서 올린 기도는 바로 무언의 민족 선언이었다. 구전제의 예, 영구 발인의 예, 장지의 예, 묘소의 예 모두 오랜 예법에 따라 진행되었으며, 1억의 마음은 들끓는 용맹한 충정으로 뭉쳤으니, 황국의 새로운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결전 속에 치르는 이 국장, 이 한결같은 맹세를.

눈을 뜨자 여자가 사라졌다 댕기머리가 한들거리는 소녀였다 필시 아내다 아내 꿈을 꾸다니 몇 년 만일까 그녀는 봄의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빛나고 있었다 몇 번이나 격렬하게 몸을 섞은 후였다 나는 봄의 태양을 향하고 몸을 쭉 폈다 그녀는 벗은 몸을 가리지도 않고 일어섰다 무릎 뒤 하얀 피부에 정맥이 돋아 있었다 그녀는 민들레를 뜯더니 휙 돌아보며 미소지었다 마치 봄 그 자체이듯 후 하고 숨을 불어 내 가슴과 배에 솜털을 날리고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비단처럼 싸늘한 손바닥이었다

글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