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기다리는 계단/이상희 글 탁혜정 그림/30쪽 8000원 초빙책방(만4∼6세)
비가 갠 날 유치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자아이의 눈을 통해 5월 주택가의 평화로움과 동심의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낸 서정시 같은 그림책이다. 이야기와 잘 어울리는 수채화가 상쾌함을 더한다.
아이는 집이 ‘언덕 위에 있다’고만 했지만 그림에서 보듯 계단을 한참 올라야하는 곳에 있는 고층아파트다. 아이의 얼굴은 한번도 나오지 않고 노란색 장화와 빨간색 무늬가 있는 하얀색 우산의 움직임을 따라 독자는 어느 새 계단 위 세계를 꼼꼼히 들여다본다. 아침에 온 빗물과 개미들, 누가 떨어뜨린 머리핀, 혹부리를 지난다. 바람이 불고 계단 옆 작은 숲에 눈이 간다. 아이도 쉬고 계단도 쉰다.
앉아서 아래를 보니 유치원이 보이고 비에 젖어 타지 못했던 미끄럼틀도 보인다. 발밑에선 제비꽃이 피어난다. 다시 계단을 오르며 마주치는 단풍잎은 춤추는 모습이 예쁘고 아카시아는 꽃향기가 좋다. 잃어버린 강아지 백구를 찾는 쪽지가 비에 젖어 더욱 슬프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런 마음도 잠시, 아이는 계단을 다 오르고 늘 자신을 마중 나오는 고양이와 만난다. 사색의 여정도 끝난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