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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일그러진 근대'…100년전 한국인은 야만인?

입력 | 2003-05-23 17:20:00

1902년 영국과 일본이 맺은 동맹을 풍자한 그림. 영국은 남성으로, 일본은 여성으로 형상화됐으며 이들의 포즈는 당시 동서양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사진제공 푸른역사


◇일그러진 근대:100년 전 영국이 평가한 한국과 일본의 근대성

/박지향 지음/3334쪽 1만3000원 푸른역사

붉은 티셔츠의 물결이 종종 애국심이나 민족성이라는 단어로 덧칠됐던 불과 1년 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지금, 이 책은 좋든 싫든 ‘민족주의적’ 감성을 지닌 많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책이다.

이른바 가장 ‘전형적’ 근대성을 만들어 낸 영국 사람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은 게으름의 화신이고, 부패하고 무능한 관리들의 전횡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는 힘없는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묘사들이 불편하다면 더더욱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영국근대사를 전공하는 저자(서울대 교수)는 지난 3년 동안 근대 제국주의를 둘러싼 다양한 양상을 추적해 왔다. ‘제국주의:신화와 현실’(2000)에서 서구에서 논의돼 온 제국주의 이론을 총괄했다면, ‘슬픈 아일랜드’(2002)에서는 영국이 아일랜드라는 내부적 타자를 설정해 간 과정을 그렸다. 이번에 내놓은 ‘일그러진 근대’는 영국이 먼 곳에 위치한 한국과 일본이라는 주변부를 타자화해 가던 담론을 분석한 것이다. 시리즈라 할 수 있는 이 책들은 제국주의를 둘러싼 역사학계의 논의가 발전해 온 방향을 충실히 반영한다.

저자는 짧은 시기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근대화를 이뤘다는 한국에서 지금 왜 근대성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탈근대’ 논의가 활발해진 지금, 근대성의 해체나 극복은 본질적으로 ‘근대성’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근대성은 국민국가, 자본주의나 시민사회, 합리성이나 세속화 같은 특질뿐만 아니라 시간을 둘러싼 특수한 경험과 역사의식이라는 요소를 갖고 있다. 따라서 서구가 자신들의 근대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자신들과 다른, 뒤처진 시기를 살아가는 듯이 보이는 ‘전근대성’을 발명해야만 했다.

근대적인 서구와 전근대적인 비서구를 이분법적으로 대립시키는 이런 담론의 장치 속에서 영국과 동아시아의 조우는 근대와 전근대의 만남으로 묘사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책은 서구의 ‘근대성’ 담론이 단일하지도, 일관적이지도 않았음을 강조한다. 같은 시기에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 이자벨라 버드 비숍과 조지 커즌의 여행기는 본질적으로 식민담론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지만 여성과 남성여행자였다는 ‘젠더’의 문제에 들어서면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이 두 여행가를 바라보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인식 또한 뚜렷이 다르다. 인종이 젠더보다 더 중요한 요소였던 일본에서 비숍이 서양인으로서의 우월감을 유지했다면 백인이지만 여자가 혼자 여행 다니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한국인의 반응은 훨씬 더 복잡했다.

근대와 전근대를 혼재시키는 제국주의적 구도 속에서 서구와 비서구의 상호인식 또한 시기별로 부침을 겪는다. 19세기 후반 일본의 서구화 열기를 애정의 눈으로 바라보던 영국인들은 20세기 초가 되면 일본인을 서구적 껍데기만을 모방하는, 위험하고도 교활한 인종이라고 비판하기 시작한다.

한편 영국 문명을 최상의 문명이자 근대성의 표징으로 흠모하며 영어를 국어로 사용하자는 논의까지 했던 일본의 지식인들은 1890년대에 이르러 서구화에 대한 심각한 회의에 빠지게 된다.

일본과 한국을 비서구라는 하나의 집합체로 취급하면서도 끊임없이 그 둘 사이의 서열을 매기고, 일본의 근대화를 칭송하면서도 거꾸로 ‘서구의 때가 덜 묻은’ 한국의 미덕을 찬양하는 양상들은 서양 근대성 담론의 다양성을 잘 드러낸다. 따라서 100년 전 영국인이 묘사한 한국과 일본의 모습은 곧 에드워드 사이드가 상정한 오리엔탈리즘이 획일적이고도 일방적인 한계를 지닌 틀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설혜심 연세대 교수·서양사학 snowlove85@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