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 델리. 1948년작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그는 누구인가?/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외 지음 정진국 옮김/432쪽 8만원 까치
“나는 때를 기다리는 신경다발이다. 그것은 오르고 또 올라 마침내 터져버린다. 그것은 육체의 기쁨이고, 춤이고, 시간이고 또 얽힌 공간이다. 그래, 그래, 그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의 결말처럼, 보는 것이 전부다.”
생존해 있는 사진작가 가운데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는 프랑스의 앙리 카르티에브레송(1908∼). 그는 현재가 과거로 변해 가는 시간의 연속 속에서 극도의 정확성으로 ‘순간’을 건져내 뒤에 남은 사람들에게 그 감동을 전한다.
모스크바. 1954년작(왼쪽) 렌즈안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화가 파블로 피카소, 파리, 1944년작.
이 책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인쇄돼 전 세계 10여개 국가에서 동시 출간됐다.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 그림, 관련 자료와 전문가들의 해설을 담은 이 책은 오늘날 예술작품의 복제에서 인쇄기술이 도달한 최고의 수준을 보여준다.
프랑스에서는 이 책의 출간과 함께 4월30일부터 파리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에서 그의 작품 전시회가 시작됐다. 3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 볼 수 있다는 이 전시회는 7월27일까지 계속된다.
1948년 간디의 마지막 순간, 1948∼49년 사회주의 혁명 전후의 중국, 1954년 소비에트의 역동적인 거리, 1968년 5월 파리의 학생 혁명, 그리고 그가 만났던 장 폴 사르트르, 사뮈엘 베케트, 에우제네 이오네스크, 앙드레 말로, 장 주네, 알베르트 자코메티,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로버트 오펜하이머, 코코 샤넬 등 20세기의 거장들….
화가로 출발한 그는 자신의 급한 성질과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속도에 걸맞은 도구를 원했고, 1931년 마침내 그가 “붓보다 빠른 도구”라고 예찬했던 라이카 카메라를 손에 들고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기 시작했다.
그는 사진을 한 편의 ‘재빠른 데생’으로 여겼고 ‘결정적 순간’을 담아내는 그의 카메라를 스케치북으로 간주했다. 이렇게 해서 그가 찍은 사진들은 현대 사진 작가들의 기준점이 됐다. 그러나 그는 순간을 잡는 스틸 사진에 머물지 않았고 ‘게임의 규칙’(1939), ‘귀향’(1945), ‘캘리포니아 인상기’(1969), ‘남향’(1970) 등의 영화를 통해서 운동하는 현실에도 밀착했다.
1973년 그는 카메라를 놓고 그가 출발했던 자리, 즉 캔버스로 돌아갔다. 그에게 “사진은 즉각적 행위이고 데생은 명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느리고 복잡한 유화 대신, 무광택의 표면 위에 머뭇거림 없이 재빠르게 그려낼 수 있는 데생을 택했다. 데생에는 속기술과 달필의 매력이 있었다. 그의 데생은 대상을, 렌즈보다 더 ‘사실적으로’ 포착하는 예술이다.
그의 시대보다 더 빠른 변화의 시대,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통한 이미지의 생산, 조작과 감상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현대적 이미지 포착 예술의 원점에는 여전히 카르티에 브레송이 있다.김형찬기자·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