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개봉됐던 ‘주유소 습격사건’이란 영화는 “나는 한 놈만 팬다”를 유행어로 만들었다. 싸움 상대가 아무리 많더라도 한 사람만을 택해 그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짐으로써 싸움판 전체를 우세로 돌려 놓는다는 것이었다.
요즘 증시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다. 네오위즈 NHN 다음 옥션 등 인터넷기업과 LG생명과학 대우조선해양 세코닉스 등 실적이 호전된 일부 ‘센 놈’들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종합주가지수는 조롱 속의 새처럼 몇 달째 550∼630의 박스권에 갇혀 있는 것을 생각하면 신기한 노릇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정부의 ‘투기대책’을 비웃듯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의 땅값이 하늘로 날아가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는 1·4분기 경제성장률이 3.7%로 떨어졌을 정도로 나빠진 경기를 살리기 위해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400조원에 육박하는 단기부동자금이 공급이 제한돼 희소가치가 있는 자산, 즉 성장성과 수익성이 좋은 주식과 가격상승이 예상되는 지역의 아파트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반면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중국의 저가 공산품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기업과 미국의 달러 약세 정책으로 원-달러환율이 떨어지는(원화가치 상승) 것에 부담을 느끼는 수출기업의 주가는 삼복더위가 오기 전에 이미 더위를 먹은 듯 맥을 못 춘다. SK글로벌과 신용카드 부실의 멍에를 지고 있는 은행 증권 카드 등도 빼앗긴 들에서 봄이 오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인터넷 주가가 날아갈 때 ‘거품이겠지’하며 짐짓 모른 체하던 기관들이 지난주부터 더 늦기 전에 사자며 추격매수하고 있다. 기관이 가세한 만큼 오르는 종목만 날아가는 차별화·종목장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에너지가 보충되지 않으면 달리던 자동차는 머지않아 멈추게 마련이다. 부동산에 몰렸던 자금이 증시로 들어오고 카드채 문제가 말끔히 해소되며 ‘환율전쟁’ 진정으로 원-달러환율이 급격히 떨어지지 않는 등 펀더멘털(기초여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나는 놈들도 꺾이고 그것으로 ‘차별화 잔치’도 끝나 다시 한번 고통을 남길 수 있다.
홍찬선 기자 h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