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처럼 잘하죠”“그동안 매일 호텔에서 젓가락질 연습을 열심히 했다”며 능숙한 솜씨로 젓가락질 시범을 보이고 있는 쿠엘류감독. “한국 사람들은 포르투갈 사람들과 같이 라틴 기질이 있는 것 같아 편하다”고 말했다. 원대연기자
“한국은 참 마음이 편안한 나라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얼마 전 잠깐 한국을 방문했던 아내와 딸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내 가족이 나와 같은 느낌을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어요”.
움베르토 쿠엘류(53)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과의 ‘런치 토크(점심 수다)’는 시종 즐거웠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프랑스와 모로코 등 여러 국가를 두루 거친 ‘국제 신사’답게 그는 점잖고 겸손했다.
23일 1시간30분 동안 본사 취재진과 점심식사를 같이 한 곳은 서울 강남의 한 한국식당. 그는 지난 번 부인, 딸과 함께 한 차례 식사를 했을 정도로 이곳의 ‘손맛’에 반해 있었다. 쿠엘류 감독이 식당만은 자기가 정하겠다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입가심
미리 종업원을 통해 쿠엘류 감독이 프랑스산 적포도주(샤토 라세귀 1996년산)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터라 와인 한잔을 권했다. 그러나 그는 “다음 약속 때문에 술은 안 된다. 냉수 한잔이면 족하다”며 사양했다. 그러면서 또렷한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전채
놀라운 일은 계속됐다. 쿠엘류 감독은 젓가락을 들더니 전채로 나온 샐러드를 능숙하게 입으로 가져갔다. 젓가락질이 여느 한국인 못지않았다. 그는 눈이 휘둥그래진 취재진에게 “그동안 호텔에서 매일 젓가락질 연습을 했다”며 웃었다.
한국음식이라곤 입에 대지 않았던 전임 히딩크 감독과는 너무나 대조적. 그러나 기자가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어 보이며 권하자 “매운 것은 어렵다”며 손사래를 쳤다. “김치도 아직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 그가 잘 먹는 한국 음식은 불고기나 맵지 않은 물김치 종류. “축구는 보편적인 것이며 세계 어디를 가든 통한다. 그렇지만 한 나라 축구를 더 깊이 알려면 그 나라 문화를 알아야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전복 버터구이
종업원이 메뉴판을 건네주기도 전에 쿠엘류 감독은 정확한 한국말로 “전복 전복∼”을 외쳤다. 그가 전복요리를 처음 맛본 것은 지난달 제주도 휴가 때. 그 맛에 반한 쿠엘류 감독은 서울에 돌아와서도 한국 식당을 찾을 때마다 ‘버터를 발라 구운 전복요리’만을 고집할 만큼 마니아가 됐다.
그러나 날 것으로는 못 먹는다. 생선회도 질색. 비싼 전복을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운 쿠엘류 감독, 때맞춰 제주산 옥돔튀김이 상위에 오르자 젓가락으로 뼈 채 한 점을 떼어내 입안에 넣었다. 다시 말이 이어진다.
“난 골프와 요리가 취미예요. 먹는 것의 80%가 생선일 만큼 생선요리를 즐기죠. 생선구이 요리는 내가 직접 합니다.”
“포르투갈에서는 일주일에 두, 세 번 씩 골프를 쳤는데 한국에 와서는 아내와 한번 쳤습니다. 내 골프실력은 핸디 13정도이고 아내는 핸디 17,18쯤 되지요. 골프와 축구는 집중력을 요한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축구와 인생의 공통점’을 묻자 “승리!”라고 잘라 말한다. 축구와 마찬가지로 인생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것.
쿠엘류 감독은 가족 얘기도 굳이 숨지지 않았다. 프랑스인인 부인의 부모는 우크라이나계. 부인의 영향으로 자신도 러시아발레와 오페레타(경가극·가벼운 희극에 노래 춤을 곁들인 음악극)에 심취해 있다는 것. 쿠엘류 감독이 취임이후 인터뷰에서 ‘축구는 발레와 같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취재진의 시범에 따라 난생 처음 ‘불고기 상추쌈’을 해먹는 쿠엘류. “생각보다 맛이 괜찮다며 인생은 이렇게 매일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원대연기자
#불고기 상추쌈
식당에서 직접 재배한 무공해 상추를 내놨다. 취재진이 불고기 상추쌈을 먹어 보이며 한번 시도해보라고 하자 결심한 듯 상추에 소고기를 올린 뒤 된장까지 찍어 조심스럽게 입안에 넣는다. “따봉!”(아주 좋다), 이런 맛인지 몰랐는데 아주 마음에 듭니다”. 신이 난 쿠엘류 감독은 상추에 깻잎까지 올린 완벽한 상추쌈을 만들어 볼이 터지도록 입에 넣고 씹는다.
“한국에 오기 전 문화와 언어의 장벽 때문에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름대로 각오를 단단히 했고 축구에만 정신을 쏟은 것도 힘든 것을 잊기 위해서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쿠엘류 감독이 신사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거 립 서비스 아닌가요?(웃음) 사실 일을 할 때는 독하게 해도 오늘처럼 개인적으로 만날 때는 보통 사람으로 돌아가 편하게 대화해야 한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쿠엘류 감독은 지난해 월드컵 때 한국인들의 길거리 응원을 어떻게 봤을까.
“너무 아름답고 감동적이엇습니다. 축구에 대한 기쁨을 표현하라면 바로 한국의 길거리 응원일 것입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축구 홍보 포스터를 만든다면 한국의 길거리 응원 모습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마지막 요리로 밥과 된장국이 나오자 그는 “맵다”며 국을 아욱국으로 바꾼 뒤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망고 디저트
망고는 쿠엘류 감독이 즐기는 과일중 하나. 반쪽으로 자른 망고를 껍질이 보일 만큼 남김없이 먹었다.
“한국 선수들은 유럽선수들과 비교해 감독 말 잘 듣고 착하죠? ”
“한국 선수들이 말을 잘 들었으면 지난 번 친선경기 때 콜롬비아에 4―0, 일본에 5―0으로 이겼을 겁니다(웃음)”. 물론 농담이었다.
“경기에 임하는 자세와 훈련자세, 적극적인 모습이 아주 좋습니다. 한국 선수들의 기본 자질은 우수합니다. 감독이 뭘 요구하더라도 선수들이 편안하게 느낀다면 좋은 것 아닙니까”.
한국 실정이 밝을 리 없는 쿠엘류 감독. 남는 저녁시간에는 무얼 하며 지낼까.
“지금까지는 경기 비디오를 분석하고 선수들을 파악하느라 짬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여유가 생기면 골프를 치고 싶고 연극, 콘서트도 관람하고 싶습니다. 여가시간은 개인적으로 아주 중요합니다”.
쿠엘류 감독은 승용차에 포르투갈 전통음악인 ‘파두’ CD를 싣고 다니며 듣는다.
“파두는 사랑과 좌절, 실연당한 애기 등을 노래하는, 한마디로 삶을 표현하는 노래입니다. 저녁에 호텔에서 파두를 들으며 책을 읽기도 합니다”.
사족 하나. 쿠엘류 감독은 ‘추리소설과 만화광’이다. 프랑스 추리작가 시므농의 40여권에 이르는 전집을 모두 갖고 있다. 또 프랑스의 인기만화인 ‘아스테릭스’ 애기가 나오자 주인공들의 이름을 줄줄대며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쿠엘류는 누구
△생년월일=50년 4월 20일생
△출생지=포르투갈 포르투
△가족관계=부인 로랑스와 2녀
△A매치 출장기록=64경기(6골)
△프로경력=라말덴세(64∼66) 벤피카(66∼75,77∼85)파리생제르망 (75∼77)
△지도자 경력=SC 살구에이로스 감독(85∼86)SC 브라가 감독(86∼87)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97∼2000·유로2000 4강)모로코 대표팀 감독(2000∼ 2002)
△한국대표팀 감독 계약 기간=2003. 3월1일∼2004년 8월31일(18개월)
△기타=현대 다이너스티3000cc 차량에 기사 제공. 통역(포르투갈어, 프랑스어) 수행. 하얏트호텔 스위트룸을 숙소로 사용. 휴가는 연간 4주 이내. 개인 초상권을 따로 인정받음. 사무실은 축구협회 3층에 30평 규모의 감독실을 사용. 연봉은 공식 발표되지 않았으나 히딩크 전 감독의 80% 수준으로 알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