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박경옥씨가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로 숨진 딸이 좋아하던 인형을 감싸 쥔 채 울먹이고 있다.-대구=이권효기자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가 발생한 지 28일로 100일을 맞는다.
이 참사로 대학생인 딸 희정(姬貞·22·대구대 회계학 2년)씨를 잃은 박경옥(朴慶玉·49·경북 포항시)씨는 여전히 대구시민회관 1층 유족대기실에서 다른 유족 50여명과 함께 지내고 있다.
박씨는 “며칠 전 지하철 참사로 스러져간 희정이가 앳된 초등학생 모습으로 꿈에 나타났다”며“희정이가 저세상으로 간 지 100일 가까이 됐지만 금방이라도 전화가 걸려 올 것만 같다”고 말하면서 연방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참사 당시 50초 동안 죽음의 문턱에 서있던 ‘딸과 마지막 전화 통화’라도 한 사실을 위안으로 여기고 딸의 마지막 음성을 떠올리기 위해 매일 기억을 더듬고 있다.
참사 직후 포항 집에 있던 그는 ‘엄마, 지하철에 불이 났어’라는 딸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처음엔 차분하게 이야기를 해서 얘가 농담을 하나 싶었어요. ‘희정아,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자세를 낮춰라. 왜 이렇게 조용해. 주변에 사람들이 없니’ 했더니 ‘모두 갇혔다’라고 하더군요. 곧 ‘못 참겠다’며 휴대전화가 바닥에 툭 떨어지는 소리가….”
당시를 회고하면서 손수건으로 연방 눈물을 훔치던 박씨를 지켜보던 부근의 유족들은 “가해자 입장인 대구시가 책임 회피식으로 사태 수습에 임해왔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참사 이후 일련의 수습과정에서 대구시가 미숙하거나 잘못한 점에 대해 항의를 하는데도 행패를 부리는 것처럼 잘못 알려졌습니다. ‘유족들이 별나다’는 일부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족들은 “추모공원 조성문제 등 남은 문제가 해결돼 하루라도 빨리 이곳 생활을 정리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수습상황과 과제=대구지하철 희생자대책위는 참사 이후 추모공원 조성 후보지가 선정되지 않은 점을 들어 시신 인수를 거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체 사망자 192명의 시신 중 개별 장례식을 치르지 않은 81구가 아직 냉동고에 보관돼 있고 보상금 지급도 늦어지고 있다. 또 부상자 147명 가운데 9명은 아직도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유족들은 “이번 참사의 교훈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묘역과 위령탑 안전교육관을 한 곳에 모은 형태의 ‘추모공원’을 반드시 건립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희생자 대책위는 도심에 위치한 중구 수창공원 조성 예정지와 대구대공원 등 두 군데를 추모공원 조성 후보지로 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시는 관련법 개정의 어려움과 인근 주민 반대로 인한 집단 민원 등을 내세워 도심 추모공원 조성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시는 경북 칠곡군 지천면 대구시립공원묘지를 추모공원 후보지로 제시했으나 유족들은 추모시설 분산을 이유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한편 이번 참사로 대구지하철 1호선 중 중앙로역 등 도심 구간을 제외한 채 ‘부분운행’ 되고 있어 시민 불편이 계속되고 있다 .
시는 8월21일부터 11일간 열리는 2003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이전에는 사고가 난 중앙로역 구간의 복구를 마치고 개통을 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시 관계자는 “‘현장 보존’을 요구하는 유족들의 반대로 안전진단만 실시한 채 보수공사에 나서지 못해 유니버시아드대회 전 지하철 개통은 확실치 않다”고 밝혔다.
대구=정용균기자 cavatina@donga.com
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