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나 방송에 ‘○○증권사에서 △△펀드를 판다’느니 ‘헤지펀드가 준동하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자주 나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뮤추얼펀드, 자사주펀드, CBO펀드, 온라인영화펀드…. ‘펀드’라는 단어가 붙은 낱말이 굉장히 많습니다. 펀드란 무엇일까요? 백과사전에는 ‘불특정 다수인으로부터 모금한 실적 배당형 성격의 투자기금’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백과사전보다 더 쉽고 재미있게 펀드가 뭔지 알려 드립니다.》
여덟 살 우람이는 은행을 ‘돈 만드는 공장’으로 믿고 있습니다.
우람이는 2월 초에 설날 세뱃돈 10만원으로 저축예금 통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은행에 가보니 10만2700원으로 불어나 있었습니다.
돈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 맡아 보관해 주고 이자까지 붙여 주니 은행이 참 고마웠습니다. 두 살 위인 형에게 물어보니 “은행에는 돈을 불려주는 뻥튀기 기계도 있다”는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보람이 형의 대답은 사실 ‘뻥’입니다. 1만원짜리 헌 돈을 집어넣으면 1만원짜리 새 돈과 100원짜리 동전을 주르르 쏟아내는 뻥튀기 기계는 은행에 없습니다.
은행이 손해를 보지 않고 이자를 주는 비결은 다른 데 있습니다.
은행은 우람이 같은 예금자들에게서 받은 돈을 금고에 쌓아두지 않고 ‘투자’를 합니다. 투자할 곳은 많습니다. 주로 돈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대가로 이자를 받는 일을 합니다. 기업이 파는 주식을 사 뒀다가 연말에 그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금을 나눠 갖기도 합니다. 기업들이나 정부가 파는 채권(빚 증서)을 사 두고 이자를 받기도 합니다. 주식이나 채권을 배당 또는 이자가 나오기 전에 비싼 값에 되팔아 돈을 버는 때도 있습니다. 땅이나 건물을 사 뒀다가 값이 오르면 팔아서 이득을 보는 경우도 있고요. 이렇게 값어치 있는 물건을 사고팔아 돈을 버는 것을 ‘투자’라고 합니다.
투자는 은행이 자기 직원을 시켜서 하기도 하고 다른 회사에 맡겨서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수고비(수수료)를 받고 남의 돈을 불려 주는 회사가 투신운용사 또는 투신사입니다. 투신사는 은행뿐만 아니라 보험사 증권사 일반기업 공공기관 개인고객 등으로부터 모은 돈을 각양각색의 ‘펀드’로 쪼개서 관리합니다. 펀드를 몇 개씩 맡아 투자하는 전문가가 ‘펀드매니저’입니다. 23일 현재 한국에는 모두 6289개의 펀드가 있습니다. 펀드에 맡겨진 돈은 160조4980억원에 이릅니다.
펀드는 어디에 얼마나 투자하느냐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원더풀주식S-1’ ‘△△오딧세이주식’ ‘바이코리아르네상스주식2-3’ 등 한껏 멋을 부린 이름은 갖고 있는 게 주식형 펀드입니다. 펀드에 가입한 고객 돈의 60% 이상을 주식에 투자합니다. ‘비과세추가형국공채H1’ ‘세금우대공사채2’처럼 무뚝뚝하지만 담백한 이름을 가진 채권형 펀드는 60% 이상을 채권에 투자합니다.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는 금액이 비슷한 펀드를 혼합형 펀드라고 합니다. ‘머니마켓펀드(MMF)’라고 외래어 그대로 쓰는 펀드도 있는데요, 고객이 원하면 언제든지 맡긴 돈과 수익금을 나눠 돌려주는 펀드를 말합니다. MMF는 자연히 빚 갚을 시점이 얼마 남지 않은 채권에 주로 투자를 합니다. 10월경에는 빌딩 임대사업이나 아파트 개발사업에 주로 투자하는 부동산형 펀드도 나올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펀드는 100명 이상의 고객한테서 공개적으로 돈을 모아 만든 공모(公募)펀드입니다. 공모펀드는 ‘고객 돈 이외에 은행에서 돈을 더 빌려서 투자하면 안 된다’, ‘한 주식에 펀드 돈의 10% 이상을 투자할 수 없다’는 등 까다로운 정부 규제를 받습니다.
100명 미만의 고객한테서 돈을 받아 훨씬 자유롭게 투자하는 사모(私募)펀드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조지 소로스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퀀텀펀드 같은 헤지펀드입니다. ‘헤지(Hedge)’란 투자에 실패할 때를 대비해 손해를 줄이는 복잡한 투자기법을 쓰는 것을 말합니다. 헤지펀드는 주식 채권 외환 파생상품 등 전 세계의 온갖 시장을 넘나들며 마치 도박하는 것처럼 투자를 하기 때문에 이런 안전장치를 갖고 있습니다.
프라이빗에쿼티펀드도 몇몇 부자들한테서 투자자금을 모으는 사모펀드입니다. 잘 나가다가 갑자기 돈이 궁해 쩔쩔매는 기업에 접근해 주식을 통째로 넘겨받은 뒤 기업이 되살아나면 이를 되팔아 떼돈을 법니다. 최근 SK㈜의 1대주주가 된 크레스트시큐리티라는 외국 증권회사도 사실은 이런 유형의 펀드입니다.
아무리 전문가가 운영하더라도 펀드 역시 투자에 실패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외환위기 직후 펀드들이 당시 3대 그룹이었던 대우그룹 계열사가 발행한 채권에 너무 많은 돈을 투자했다가 곤욕을 치렀습니다. ‘대우가 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고객들이 몰려와 ‘내 돈 내놓으라’고 아우성쳤지만 대우 채권이 팔리지 않는 바람에 내 줄 돈을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정부가 세금으로 거둬들인 돈 가운데 7조8000억원(공적자금)을 대줘 간신히 위기를 넘겼습니다. 올 3월에는 MMF펀드들이 카드사가 발행한 채권에 고객 돈을 쏟아 부었다가 카드채 거래가 뚝 끊기자 한동안 고객에게 돈을 돌려주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머니마켓펀드(MMF)란? ▼
Money Market Funds. 고객이 요청하면 그날 즉시 고객이 맡겼던 적당한 수익을 얹어 돌려주기로 약속한 펀드 상품. 언제든지 돈을 뺄 수 있기 때문에 부동(浮動)자금. 즉 떠돌이자금의 안식처로 활용된다. 만기가 긴 상품에 투자하거나 부실채권에 투자하면 고객이 요청해도 바로 돌려줄 돈을 마련하지 못해 약속을 깨는 '환매대란'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에피소드=옛 소련의 계획경제 ▼
스탈린이 옛 소련을 통치하던 시절에 탄광에서 석탄을 캐는 채굴장비가 부족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장비를 생산하는 기업의 창고에는 채굴장비가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장비가 부족한데 다른 한쪽에서는 남아도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왜 일어났을까요?
정부가 ‘채굴장비에 붉은색 유성 페인트를 칠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랍니다. 그 공장에는 초록색 유성 페인트밖에 없어 붉은색 페인트가 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던 것이지요. 붉은색 페인트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아무런 죄가 되지 않으나, ‘페인트 규정’을 어기고 푸른색 페인트를 칠한 장비를 탄광에 보내면 8년 동안 감옥생활을 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무엇을 만들지를 정부가 사전에 결정해 주는 계획경제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계획경제는 개발 초기에는 한정된 자원과 돈을 꼭 발전시켜야 할 부문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엄청난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한국이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것도 경제개발5개년계획이라는 계획경제의 덕을 본 측면이 많습니다.
하지만 경제 규모가 커지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계획의 ‘약발’은 급격히 떨어지고 오히려 발전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소련이 후진농업국가의 굴레에서 벗어나 미국보다 먼저 우주선을 쏘아 올리며 세계를 호령하게 만들었다가 경쟁력 상실로 무너진 것도 바로 계획경제의 두 얼굴입니다.
계획경제의 반대말은 시장경제입니다. 시장경제에선 누가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얼마에 팔지를 어느 누구도 결정하거나 말해주지 않습니다. 오로지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을 남보다 싸고 좋게 만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이란 ‘정글의 법칙’만이 적용됩니다. 특히 세계적 경쟁력이 있는 1등 기업만이 엄청난 이익을 얻고 나머지 기업은 살아남는 것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세계화(Globalization)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홍찬선기자 h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