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원국씨가 23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 전당’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주변 경관을 즐기고 있다.-박주일기자
발레 관계자들은 한국 남성 발레의 역사를 두 시기로 나눈다. ‘이원국 이전’과 ‘이원국 이후’로.
동아일보 기획 ‘프로들이 선정한 우리 시대 최고’ 시리즈에서 국내 최고 무용수로 뽑힌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원국씨(36)를 23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만났다.
“도시에서 이런 유럽풍 분위기를 느끼기 쉽지 않아요. 한 번 보실래요?”
그는 오페라하우스 앞 음악광장의 노천카페에 앉았다.
하얀 파라솔 밑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곳의 ‘세계음악분수’를 보는 것은 그에게 삶의 청량제. 연 80회 이상 공연하고 매일 리허설로 숨 돌릴 틈도 없는 그에게 이곳은 유일한 휴식 공간이다.
이곳의 분수는 가로 43m, 세로 9m 크기의 수조에 800여개의 노즐과 60대의 수중펌프, 500여개의 조명등으로 돼 있다. 산맥 난초 등 한국화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계의 음악에 맞춰 물줄기가 춤을 추는 모습이 장관이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분수 뒤 대형 화면으로 공연 실황이 중계된다. 이 곳의 공연 티켓 가격은 일반인에게 다소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음악광장을 찾는다면 공연을 공짜로 즐길 수 있다.
“9월까지 매월 둘째, 넷째 토요일에 분수콘서트가 열려요. 분수대 앞에서 합창 마임 등 각종 공연이 있죠. 6월14일에는 발레를 볼 수 있어요.”
그는 발레가 ‘귀족적인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라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발레를 ‘귀족들의 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고 사실 그런 면도 있었습니다. 이젠 영화처럼 편하게 보세요. 발레에는 스토리가 있으니 공연 전에 한 번 읽어보고 감상하면 이해가 어렵지 않습니다.”
오페라하우스 아래 미술광장에서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만든 인테리어 소품이나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클로즈 아트 마켓’이 열린다.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다.
그가 마지막으로 추천한 곳은 분수대 위의 연못 ‘우면지’.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이 야외촬영 장소로 많이 찾지만 그에게는 고민을 푸는 ‘사색의 공간’이다.
“무용수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직업이에요. 항상 관객들 앞에서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어야 하는 부담도 크고 지적으로 깊어지는 30대 후반이면 체력이 달려 걱정이죠.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 합니다.”
발레의 정상에 올랐지만 끊임없이 고민하는 그의 모습에서 어떻게 그가 ‘한국 발레의 교과서’가 됐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