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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일과 꿈][톡톡인터뷰][월드컵]윤도현…아직도 '월드컵 가수' ?

입력 | 2003-05-28 18:04:00


31일은 ‘2002 한일 월드컵’의 개막식이 열린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바로 이날 우리 ‘윤도현 밴드’(윤밴)는 1년 전 그때처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소프라노 조수미씨와 함께 공연을 갖는다. 한일 월드컵을 되돌아보면 한국 축구 대표팀의 4강 진출뿐 아니라 네티즌과 시민이 만들어낸 자발적인 거리응원전을 잊을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다시는 맛볼 수 없는 멋진 추억으로 남은 셈이다.

▼잊지못할 월드컵-평양공연 ▼

지난해 나는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MBC FM ‘2시의 데이트’ DJ로, KBS TV 음악 전문 프로그램인 ‘윤도현의 러브레터’의 진행자로 라디오와 TV를 쉴 새 없이 누볐다. 한 해 동안 방송출연 횟수가 데뷔 후 7년 동안의 횟수보다도 훨씬 많았으니 말이다. 거기에 결혼도 하고 몇 편의 광고에 출연하는 등 새로운 경험도 했다. ‘윤밴’ 멤버들의 표현을 빌리면, ‘별 희한한 짓’을 다 해본 것이다.

그러던 중 한일 월드컵이 찾아왔다. 때마침 ‘윤밴’은 붉은 악마와 함께 작업한 ‘아리랑’을 라이브 앨범에 담아낸 데 이어 모 CF의 배경음악으로 삽입된 ‘오 필승 코리아’를 발표했다. 덕분에 ‘윤밴’은 월드컵 기간 내내 거리응원전에 불려 다녔고, 야외무대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며 즐겁게 노래했다. ‘윤밴’의 노래들은 월드컵 때 최고 인기곡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우리는 멋진 음악을 선보였다는 것보다 모든 국민들이 생생한 현장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이 ‘월드컵의 뜻 깊은 선물’이라고 믿는다.

또 하나 지난해 잊지 못할 추억은 9월 평양 공연에 참가한 것이다. 북한에서 록 밴드 무대는 처음이었기에 관객들의 반응이 썰렁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던 게 사실이다. 북한 안내원이 ‘윤밴’의 음악을 듣고는 “그게 무슨 음악이요?”라고 되물을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가 무대에 올라 ‘뱃놀이’ ‘아리랑’ 등 옛 노래를 록 스타일로 열창하자 청중들은 박수와 갈채를 보냈다. 나는 남과 북이 하나라는 느낌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월드컵에서 보여준 거리응원전에 이어 지난해 가을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요구하는 네티즌들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거리 문화도 잊을 수 없다. 거리를 가득 메운 그들의 모습은 내가 예전에 보아왔던 386세대들의 과격하고 비장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축제였고,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자의식의 자연스러운 발산이었다. 정말 작년 한 해의 여러 일들은 그 어떤 기획된 이벤트보다도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월드컵은 월드컵이고, ‘윤밴’은 ‘윤밴’일 뿐이다. 때로는 월드컵이 부담스럽게 다가올 때도 있다. 멤버 모두들 묵묵히 7년째 음악을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데 ‘월드컵 가수’라거나 “월드컵 이후 광고 섭외가 많아졌다”는 식의 말을 듣기 때문이다. ‘윤밴’ 멤버들은 이런 틀 속에 갇혀 그동안 고민해왔던 음악에 대한 열정이 평가절하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요즘 월드컵 관련 출연 의뢰가 들어오면 매니저에게 “‘오 필승 코리아’를 얼마나 더 불러야 하느냐?”고 말하곤 한다.

요즘도 ‘윤밴’은 월드컵을 통해 가졌던 즐거운 기억과 국민 모두와 함께 누렸던 축제의 기쁨을 고스란히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월드컵 노래를 예전보다 자주 부르진 않겠지만, 그 소중한 열정들을 우리 음악에 담아내고 싶다. 그러한 자양분은 지금 우리가 3개월째 지하 녹음실에서 만들고 있는 6집 앨범에서 멋지게 분출될 것이다.

▼틀속에 갇힌 음악 원치않아 ▼

비록 느리고 힘들게 진행되는 녹음이지만 멤버 모두가 함께 만들고 있는 이 작업이 정말 즐겁다. 나는 윤도현이 아닌 ‘윤밴’으로서, 그리고 우리 대중음악을 만드는 뮤지션으로서 진정 ‘음악이 바로 서는 세상’을 꿈꾼다.

▼약력 ▼

△1972년 생 △솔로 데뷔앨범 ‘타잔’ 발표(1995년) △2집부터 ‘윤도현 밴드’로 활동(1996년) △라이브 앨범 ‘아리랑’ 발표(2002년) △‘윤도현 밴드’ 6집 앨범 발표 예정(2003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