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은 2001년 10월 구치소에 수감되기 위해 서울지검을 나서는 김형윤 국정원 경제단장, 오른쪽은 2000년 11월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는 이경자 동방금고 부회장.-동아일보 자료사진
2000년 12월 중순경. 동방금고 이경자(李京子) 부회장의 수백억원대 불법대출 사건을 수사 중이던 서울지검 특수2부의 한 사무실.
이 사건 주임검사인 장용석(張容碩) 부부장검사는 상급자인 L부장검사와 고성(高聲)을 주고받으며 언쟁을 벌였다.
▶연재물 리스트로 바로가기
“수사 기록을 돌려주시죠.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안돼.”
“정말 이래도 됩니까. 기록 돌려주세요.”
“안 된다니까.”
“당신은 검사도 아니야.”
선후배간의 위계질서가 엄격한 검찰에서 선후배 검사간에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당시 특수2부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많은 검사들은 “장 부부장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상급자에게 대들만 했다”고 평가한다. 어떤 사정이 있었을까.
당시 장 부부장은 2000년 11월 14일 이경자로부터 “김형윤(金亨允) 국가정보원 경제단장에게 5500만원을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돈의 대가성도 뚜렷했다.
이에 앞서 이경자는 2000년 7월 중순 서울 강남구 역삼동 라마다 르네상스호텔 양식당에서 김형윤을 만나 “동방금고가 금융감독원의 검사 대상에 포함될 것 같으니 검사를 막아달라”는 청탁을 했다.
김형윤은 국정원 부하 직원을 시켜 금감원의 검사 내용을 파악한 뒤 이경자에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줬다. 그 대가로 7월 28일 같은 양식당에서 이경자를 만나 5000만원을 받았고 이어 9월 9일 서초구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커피숍에서 500만원을 추가로 받았다.
L부장이 장 부부장에게 돌려주길 거부했던 사건 기록에는 바로 이처럼 구체적인 돈 전달 사실을 진술한 이경자의 피의자 신문조서가 포함돼 있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한 검사의 설명.
“당시 ‘대검 실세’와 L부장의 상급자인 ‘서울지검 고위 간부’가 김형윤 수뢰사건 수사를 중단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습니다. L부장은 이들의 뜻에 충실히 따르느라 이런 무리한 행동을 한 겁니다.”
실제로 부장검사에 의한 어처구니없는 ‘수사기록 압류 사건’은 당시 이 사건 수사의 진행상황을 지켜본 동료 검사와 수사관들의 공분(公憤)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관련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당초 장 부부장은 12월 초 수사 결과를 L부장에게 보고하면서 김형윤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체포영장을 청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L부장은 “검토해 보겠다”며 이경자의 조서 등이 포함된 수사기록을 건네받은 뒤 캐비닛에 넣어 놓고 돌려주지 않았던 것. 이 과정에서 L부장과 그에게 수사 중단을 지시한 서울지검 고위 간부는 “국정원에서 김형윤에 대해 조치를 취할 테니 그때까지만 기다리자”며 장 부부장을 설득했다.
그러나 문제는 엉뚱한 곳으로 번졌다. 김형윤은 건재했고 검찰 주변에서는 오히려 국정원이 장 부부장의 뒷조사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장 부부장은 다시 수차례 상부에 김형윤에 대한 수사 의지를 밝혔으나 윗선의 반대는 완강했다. 심지어 그는 상부로부터 다음과 같은 협박성 경고까지 전해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네가 직접 국정원에 들어가 김형윤을 체포해 나올 수 있으면 해봐라. 하지만 만약 실패하면 국정원도 검찰도 다 망한다. 절대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된다.”
이렇게 차일피일 시간이 흘러가던 중 2001년 2월경 검찰 내에선 서울지검 특수1, 2, 3부의 부부장 검사를 3월 정기 인사에서 모두 형사부로 옮기는 인사안이 만들어져 서울지검장에게 보고됐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당시 서울지검에 근무했던 한 검사의 설명.
“그 인사안은 장 부부장을 특수2부에서 빼기 위해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만 형사부로 옮기면 뒤탈이 날 가능성이 있으니까 특수1, 2, 3부 부부장 3명을 모두 옮기려고 한 것이죠.”
장 부부장은 당시 김각영(金珏泳) 서울지검장에게까지 찾아가 강력하게 항의했고, 결국 인사안은 철회됐다. 그는 곧바로 상급자들을 다시 일일이 찾아다니며 수사 강행 필요성을 설득했지만 검찰 수뇌부는 요지부동이었다.
마침내 2001년 4월경 장 부부장은 윗선에 “김형윤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 그게 안 되면 내가 사표를 쓰겠다”고 말했다. 그로서는 최후의 카드를 내민 셈이었다.
그러나 이 최후의 호소마저도 통하지 않았다. “참고 기다려라. 김형윤이 곧 사표를 낸다고 한다. 그 때 하자”는 답변만 돌아왔을 뿐이다.
당시 수사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다른 검사는 “수사팀 평검사들은 모두 장 부부장과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상부에 전달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검사들은 ‘국정원 2급 직원(경제단장)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게 무슨 서울지검 특수부냐’고 자조했다”고 말했다.
한 달 뒤인 2001년 5월 수사 중단 압력을 가한 핵심 인물인 ‘대검 실세’는 핵심 보직으로 자리를 옮겼고 ‘서울지검 고위 간부’도 승진해 서울지검을 떠났다. 김각영 서울지검장도 대검 차장으로 승진했다. L부장은 꽤 규모가 큰 지방 지청의 지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장 부부장은 헌법재판소로 파견됐다. 이 사건 관련 검사 중 유일하게 그만 사실상 좌천을 당한 것이다. 그는 올해 2월 스스로 사표를 내고 변호사 개업을 했다.
‘대검 실세’와 ‘서울지검 고위 간부’가 이처럼 결사적으로 김형윤에 대한 수사를 막은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한 검사의 설명.
“‘대검 실세’와 김형윤은 같은 MK(목포 광주)라인으로 학교 선후배 사이였습니다. 자주 만나서 술도 마시는 사이였죠. 개인적인 친분이 수사에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서울지검의 고위 간부는 대검 실세에게 적극 협조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주임검사의 강력한 수사 의지에도 불구하고 6개월 이상 수사가 중단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게 당시 검찰 주변의 관측이었다.
바로 DJ정부의 실력자였던 김은성(金銀星) 국정원 2차장을 염두에 두고 김형윤 수뢰사건 수사 중단 과정에 개입했다는 분석이었다.
실제 장 부부장은 2000년 11월 9일 이경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진술을 받았다.
“2000년 9월 9일 김형윤 단장을 교육문화회관 커피숍에서 만나 500만원을 준 바로 전날 같은 장소에서 김은성 차장을 만나 1000만원을 전달했다.”
그러나 이경자는 김은성에게 전달한 돈은 대가성이 없는 ‘떡값’이라고 주장했다.
‘대검 실세’는 바로 김형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 경우 김은성의 금품 수수 관련 진술도 공개될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 수사 상황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던 사정당국 한 관계자는 “김은성은 대검 수뇌부를 직접 만나 수사 관련 의견을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파워가 있었다. 특히 김은성은 김형윤 수사를 중단시킨 ‘대검 실세’와 개인적으로 오랜 기간 친밀하게 지낸 사이였다. 함께 골프를 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고 증언했다.
장 부부장을 포함한 특수2부 수사팀 및 수사 지휘부가 대폭 물갈이되면서 잠시 수면 아래로 잠겼던 이 사건은 본보가 2001년 9월 18일자에 ‘국정원 간부 작년(2000년) 거액수수 혐의, 검찰 소환조사 않고 덮었다’는 보도를 하는 바람에 결국 공론화됐다.
마침내 검찰은 이 직후인 10월 5일 김형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했다. 이경자의 진술 내용이 그대로 혐의로 인정됐다.
이경자가 2000년 11월 14일 돈 전달 사실을 진술한 뒤 10개월간 중단됐던 수사가 언론보도 후 단 18일 만에 쾌속 진행돼 김형윤 구속으로 이어진 것이다. 다만 김은성의 1000만원 수뢰혐의는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리됐다.
▼국정원 주요인물 존안자료 작성 DJ정권때 비중있게 활용▼
1999년 말 무렵.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검사장급을 포함한 검찰 간부 3명과 국가정보원 2차장 산하 국내 파트의 주요 부서 간부 3명이 상견례를 겸해 만났다.
식사를 마치고 폭탄주가 돌아가던 중 국정원 간부가 검사장을 상대로 입을 열었다.
“검사장님, 저희가 (당신에 대해) 좋게 보고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기실 겁니다.”
검사장의 낯빛이 변했고 한 검사가 이 말을 받아쳤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검사장께서 당신들 덕 보고 살 사람으로 보입니까. 나쁘게 보고할 게 있는데 봐준다는 말이오, 뭐요.”
국정원 간부는 항의하는 검찰 간부에게 거칠게 폭탄주를 권했고 결국 이것이 빌미가 돼 본격적인 언쟁이 벌어졌다. 결국 술자리는 양측 간부들이 멱살잡이 일보 직전까지 가는 바람에 파장이 났다.
이날 해프닝은 검찰과 국정원의 관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국정원 간부가 말한 ‘보고’란 국정원의 존안자료(개인의 신상 기록카드)의 기초가 되는 주요 인물의 일일 동향 보고. 존안자료에는 업무 능력뿐 아니라 재산 관계, 이성 문제, 주변 사람들의 평가 등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다. DJ정권에서 청와대는 정부 내 각 기관의 주요 보직 인사를 할 때 국정원 존안자료를 비중있게 활용했다. 물론 검찰 인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따라서 검찰 간부들은 국정원 존안자료를 염두에 두고 국정원 관계자들을 접촉할 때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간부들일수록 더욱 민감했다. 평소의 이런 분위기 때문에 김형윤(金亨允) 국정원 경제단장 수뢰사건에 대한 수사가 장기간 중단됐을 때 평검사들간에는 “검찰 수뇌부가 국정원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이 더욱 비등했다.
당시 검찰 내부에서는 국정원 내 특정 사조직이 수사 중단에 저항했던 주임검사의 뒷조사를 하고 있다는 소문도 났었다.
이와 관련해 한 검찰 관계자는 “당시 국정원 관계자와 친분이 있는 검찰 인맥과 국정원 내 일부 세력이 조직적으로 수사를 방해했다. 수사팀 평검사들이 넘기에는 너무 높은 벽이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장=이동관 정치부 차장
▽정치부=윤승모 차장급기자 박성원 최영해 김영식 부형권 이승헌기자
▽경제부=반병희 차장 홍찬선 김동원 박중현 김두영기자
▽사회부=하종대 이명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