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월드컵이 어느새 일주년이 됐다. 지난해 한국선수들의 월드컵 활약상은 이곳 네덜란드까지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사실 월드컵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네덜란드사람들에게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동아시아에 있는 어느 조그마한 나라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동양’하면 한국 대신 일본이나 중국을 먼저 머리에 떠올렸다.
그러나 한국의 월드컵 활약상이 모든 걸 바꿔 놓았다. 한국이 16강에 오르자 네덜란드 사람들은 한국팀에게 서서히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한국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한국이 이탈리아를 이기자 밖에서 함성을 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태극기나 한국대표팀 유니폼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생겼다. 어느 TV 축구해설자는 “한국을 너무 응원해 내가 마치 한국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급기야 '대∼한민국'이란 구호는 일본의 '사요나라'만큼이나 네덜란드사람에게 친숙한 단어가 됐다. 물론 같은 네덜란드 사람인 히딩크가 한국팀 감독이기 때문에 그랬던 면이 가장 크겠지만.
어쨌든 경기 결과보다 ‘멋진 축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한국 축구는 ‘놀람’ 그 자체였다. 90분 내내 게임을 지배하고 ‘공격적인 축구’를 하는 한국팀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네덜란드가 한일월드컵에 나가지 못한 이유를 선수들의 느슨한 정신력 탓’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선수들의강한 정신력과 몸을 던지는 투혼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네덜란드는 유로2000 준결승에서 이탈리아에게 어이없게 져 이탈리아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않았던 터라 수비축구를 하는 오만한 이탈리아를 한국이 대신 꺾자 너무 너무 기뻐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이 심판 도움으로 이겼다는 말이 많았지만 네덜란드에서는 그런 말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지난 26일 동아일보 박제균 파리특파원과 함께 히딩크를 만나러 아인트호벤에 갔었다. 이영표, 박지성, 케즈만, 반 봄멜 등 많은 선수들을 볼 수 있었다. 기라성같은 선수들 틈에서 우리 태극전사들의 당당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흐뭇했다.
네덜란드에서 뛰고 있는 한국선수들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괜찮은 편이다. 페예노르트의 송종국은 초반 맹활약으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발목부상 이후 지금은 초반 만큼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이다.
제일 잘 나가고 있는 아인트호벤의 이영표는 팬들이 전 네덜란드 대표팀 주전 뉴먼보다 더 원할 만큼 평이 좋다. 이영표는 지난 페예노르트전에서 잠시 흔들렸지만 경기를 많이 한 데 따른 체력 고갈 탓으로 좋게 봐주고 있다. 부상으로 경기를 제대로 뛰지 못한 박지성은 후반기에 활약이 기대된다.
네덜란드인들은 한국선수들의 강한 정신력과 성실한 플레이를 높게 평가한다. 대신 ‘거친 플레이’와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내년 쯤 되면 한국선수들에 대한 평가가 완성될 것 같다.
최삼열 통신원 sammychoi@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