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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신화를 삼킨 섬'…‘제주 4·3’ 원혼 달래는 씻김굿

입력 | 2003-05-30 17:17:00


◇신화를 삼킨 섬(전2권)/이청준 지음/각권 230쪽 내외 각권 8500원 열림원

어느 쪽 누구 편인가. 이 질문조차 무의미한 이들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편 가르기 싸움은 순환을 거듭하며 무고한 희생자들만을 수없이 양산했을 뿐이다.

이청준(64)은 역사와 이념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장, 제주로 걸어 들어간다. 쓰라린 비극사를 타고 너울대는 원한어린 넋을 한바탕 씻어주고 싶은 까닭이다.

1980년, 육지 무당 유정남은 아들 정요선과 신딸 순임을 데리고 제주에 들어선다. 폭력으로 정권을 세운 신군부세력(큰당집)이 정권의 명분을 세우기 위해 대대적으로 시작한 ‘역사 씻기기’ 사업의 하나로 이들을 제주로 부른 것.

요선은 제주 4·3사건으로 스러져간 넋을 달래는 굿을 치르기 위해 제주지역의 샤먼인 추심방 변심방 등을 찾아 도움을 구하지만 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하다. 고려 삼별초의 난부터 4·3사건에 이르기까지 제주는 “씻어도 씻어도 넘쳐나는 게 원귀들 천지인 판”인 데다 오른쪽과 왼쪽으로 잘라 구분 짓는 이분법에 넌덜머리를 내고 있는 터였다.

한편 제일교포 2세인 민속학자 고종민은 4·3사건 관련단체인 한얼회와 청죽회의 대척으로 상징되는 ‘악순환’에 의문을 갖는다. 그 역시 일본으로 귀화한 4·3 피해자(제주땅에서는 망자(亡者)로 기록된)의 아들이다.

“오래 전부터 근자의 4·3사건에 이르기까지 이 섬은 늘 뭍 동네나 이 나라 전체의 큰일을 대신해 어쩔 수 없는 굿마당 노릇을 해온 것 같거든요. 섬사람들이야 싫든 좋든 저희끼리 이쪽저쪽 편이 다른 뭍 세력이 건너 들어와 제각기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워 억지 굿마당을 내 놓으라 얼러 몰아붙이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고요.”

고종민은 차츰 깨닫게 된다. 실은 제주 사람들이 희생자들을 어느 쪽으로 갈라 세우는 대신 넋 그 자체를 씻어주기를 원할 뿐이라는 것. 그리고 심방들 역시 “이 섬사람들의 지난한 삶의 운명을 함께 하는 이름 없는 백성으로 해원시켜 보내고자 한다”는 사실이다.

거하게 벌어지는 굿판을 보는 것처럼, 작가가 풀어내는 무속과 비극적인 현대사는 리듬감을 타고 전해져 온다.

작가는 “나는 이 땅에 삶을 점지 받고 태어난 보통사람들의 진정한 소망과 그를 지켜 나가기 위한 끈질긴 지혜의 힘을 그리고 싶었다”고 책의 첫 장에 적었다. 무당 무(巫)자의 모양새같이 “하늘과 땅과 사람 3자간에 서로 조화를 얻어 지켜 나가려는 것”을 소망하는 것이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