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영국 미국 국기 등이 걸린 깃발을 들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텐징의 모습은 인간의 불굴의 의지와 도전을 상징하는 사진으로 기억된다.사진제공 시공사
◇텐징 노르가이/에드 더글러스 지음 강대은 신현승 옮김/418쪽 1만2000원 시공사
1953년 5월29일 오전 11시반. 뉴질랜드 양봉업자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인 텐징 노르가이가 땅 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8848m의 에베레스트 정상은 처음으로 인간의 발길을 허락했다. 인간이 이 봉우리에 도전한 지 33년 만이었다.
로체 마칼루 칸첸중가 등 8000m급의 거대한 산들이 그들의 발 아래 있었다. 텐징은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난생 처음 보는 장관이었다. 그토록 거칠고 경이롭고 장엄한 광경을 다시는 못 볼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가 느낀 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나는 산을 사랑했고 에베레스트를 사랑했다. 평생을 기다렸던 위대한 순간에 나의 산은 바위와 얼음뿐인 생명 없는 대상이 아니라 따뜻하고 친근하며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흔히 사람들은 이 정상 정복에 성공한 것이 영국 원정대였다는 이유로 힐러리의 업적만을 기억한다. 텐징은 단지 그의 등반을 도운 사람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하지만 힐러리가 한참 뒤에 고백한 대로 텐징은 정상 바로 밑에 30분 먼저 올라와 힐러리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숨가빠하는 힐러리와 함께 첫 정복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힐러리는 그의 자서전에서 “나는 나 자신을 한 번도 영웅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텐징은 예외였다. 그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그는 미천하게 출발해 세계의 정상에 올랐다”고 회고했다.
힐러리와 마찬가지로 텐징은 에베레스트 정복 후 세계적으로 유명인사가 됐다.
하지만 산 위와는 달리 산 아래서는 인간 사회의 아름답지 못한 모습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에베레스트를 정복하자 한 번도 그의 국적에 관심을 가지지 않던 사람들이 ‘네팔’이니 ‘인도’니 하며 그를 괴롭혔다. 또 영국은 힐러리에게 기사 작위를 줬지만 텐징에겐 2등급 훈장인 조지 훈장을 수여할 뿐이었다.
1914년 티베트에서 출생한 그는 어린시절 티베트와 네팔의 국경지대인 쿰중에서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며 하인으로 일했다. 사실 그는 셰르파족이 아니라 티베트인이었지만 셰르파로서 성공하게 된 것은 그의 탁월한 등반 능력 때문이었다. 1935년부터 셰르파로 일하기 시작한 그는 강인한 체력과 고용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의지 그리고 쾌활함으로 여러 국가의 원정대에 초일류의 셰르파로 인정받았다.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결코 다른 셰르파처럼 돈을 위해 등반을 하지 않았다. 그는 에베레스트 정복을 앞두고 정상 정복조를 편성할 때 원정대장인 존 헌트에게 “정상 정복조에 꼭 셰르파 한 명이 끼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물론 그 셰르파는 자신이었다.
그는 에베레스트를 다시 오르진 못했다. 그는 히말라야 등반학교에서 후진들을 양성하며 오랜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인도 정부의 지원이 부족해지면서 말년에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1986년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숨을 거뒀다. 그의 화장식 때 보기 드문 히말라야의 비가 내려 그의 육신을 마지막으로 적셨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에베레스트 첫 등정 50주년을 기념해 이 책을 낸 것은 미지와 공포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용기 있는 도전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 ‘텐징’이었기 때문이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