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는 명함도 못 내밀 공포의 ‘페스트’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라는 괴상한 전염병이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특히 거칠 게 없어 보이던 중국 경제가 전혀 예기치 못한 직격탄을 맞아 기세가 한풀 꺾였다. 정체불명의 괴상한 전염병이 세계 경제 지형까지 바꿔놓고 있는 것이다.
‘사스 충격’은 질병이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곤 했던 역사의 경험을 되새기게 한다. 역사상 유례없는 최악의 영향을 미친 질병은 중세의 페스트였다. 스웨덴의 거장 잉그마르 베르히만(영화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의 남편)의 걸작 ‘제7의 봉인’은 페스트가 창궐한 14세기 유럽의 비참한 풍경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의 제목은 성경 요한묵시록에서 따온 것으로 종말을 상징하는 7개의 봉인 가운데 마지막 봉인을 가리킨다.
십자군전쟁에 참가했던 기사 안토니우스와 그의 시종이 귀향길에 죽음의 사자를 만나 주고받는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화는 제목이 풍기는 이미지에서 예상할 수 있듯 다소 무겁고 어둡다. 마치 두꺼운 철학책 한 권을 스크린에 옮겨놓은 것 같다.
1956년 작인데도 굳이 흑백필름을 쓴 화면 역시 시종 어두운 톤으로, ‘임박한 세상의 종말’을 암시하는 듯하다. 영화를 보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몬 페스트의 참화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게 된다.
‘제7의 봉인’은 무서운 역병 앞에 선 인간이 맞닥뜨리는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담았지만 페스트는 중세 유럽의 경제·사회 체제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왔다.
중세의 몰락에는 페스트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예컨대 페스트 전파를 마녀의 소행으로 여긴 당시의 가톨릭교회는 큰 피해를 자초했다. 교회는 환자들을 격리수용하는 대신 성당에 함께 모여 미사를 드림으로써 이 병을 물리치려고 했다. 이 때문에 성직자들의 희생이 매우 컸다.
이는 라틴어를 구사하는 성직자들의 감소로 이어져 급속한 세속으로의 이행을 불러왔다. 페스트에 비교적 신속히 대처한 도시국가들에 인구가 몰리면서 이들의 세력이 커진 것도 페스트가 불러온 변화였다. 이런 흐름들이 한데 모여 결국 르네상스를 위한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과거의 전쟁 기록은 질병에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가 전투를 잘했던 이유 중 하나는 예방접종이 일반화된 덕분이었다고 한다.
유럽 열강들이 아프리카 침략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말라리아 치료제가 개발된 19세기 중반부터였다. 말라리아에 대한 공포 때문에 아프리카 내륙지방으로 들어가는 걸 꺼렸던 유럽인들에게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은 아프리카 정복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이번 사스파동으로 새삼 확인한 것이지만 국경 없는 지금의 ‘글로벌시대’에는 질병의 전파도 광속으로 이뤄진다. 모든 것이 표준화되고 획일화되는 것이 세계화의 한 특성이라면 질병도 이젠 세계적으로 표준화되고 있는 셈이다. 과거처럼 어느 지역에만 국한된 ‘풍토병’은 이젠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몇 년 전 개봉된 영화 ‘아웃브레이크’ 역시 글로벌시대 바이러스의 치명적 위력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원숭이 한 마리를 통해 문명사회 미국을 순식간에 위험에 빠뜨린다는 설정은 단순한 가정으로만 볼 수 없는 ‘현실’이다.
따지고 보면 페스트도 당시로 치면 세계화의 한 산물이었다. 유럽의 많은 학자들이 페스트의 발병지로 꼽는 것은 몽골군이다. 유럽 정복에 나선 몽골군을 통해 그전까지는 없었던 페스트균이 유럽에 상륙했다는 것이다.
다분히 서구적인 시각이 반영된 ‘떠넘기기’일 수 있지만 그 주장대로라면 몽골군은 무력으로 유럽을 정복하진 못했지만 다른 ‘무기’로 유럽을 무너뜨린 셈이다.
이명재 기자 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