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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삼보일배의 참 의미

입력 | 2003-06-01 16:29:00


새만금 삼보일배(三步一拜) 순례단을 기자가 처음 찾아간 것은 출발 18일째인 4월 14일 충남 보령시 웅천읍 부근이었다. 하루, 아니 몇시간이라도 삼배일배에 동참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취재를 나서기는 했으나 오체투지식 고행에 감히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휴식지에서 삼보일배의 동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수경스님은 대뜸 "우리가 꼭 새만금 간척사업 때문에 삼보일배를 하는 건 아닙니다"는 의외의 말을 했다.

"물론 새만금 사업 중단이 삼보일배의 목표이긴 하지만 목적은 아니지요. 우리 목적은 철저한 자기반성과 하심(下心)을 하자는 것이에요. 세상을 제대로 만들어보겠다며 나서는 사람은 많은데 지금까지 세상은 별로 달라진 게 없지 않아요. 그게 왜 그럴까. 나 자신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삼보일배를 시작한 거지요."

구호를 외치거나 물리적 힘을 쓰는 대신 가장 평화적이면서도 격렬한 고행을 택했던 것이다.

수경스님은 "삼보일배 순례단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반성해볼 계기가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덧붙였다.

그들은 더 철저한 자기반성을 위해 5월 4일부터는 묵언(默言)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의 몸은 서서히 망가져가고 있었다. 무릎, 관절, 근육 등이 피로를 이기지 못했다. 수경스님은 서울 입성을 하루 앞두고 갑자기 쓰러졌다. 병원에선 '근육 자체가 파괴되고 있으니 당장 입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다음날 새벽 몰래 병원을 빠져나와 다시 삼보일배 대열에 합류했다.

5월 23일, 마침내 삼보일배 순례단이 과천을 지나 서울에 입성한 순간. 휠체어에 몸을 실은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50대의 두 성직자는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오래동안 진하게 울었다. 그 눈물은 고생에 대한 회한이 아니었다. 드디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는 감격 때문이었다.

5월 31일, 순례단은 길고도 험난한 여정을 마치고 마침내 목적지인 서울 시청앞에 도착했다. 두 성직자는 시청앞에 대기하고 있던 5000여명의 시민들로부터 열렬한 박수를 받았지만 검게 그을린 그들의 얼굴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정부와 국민에게 한 마디 해달라는 취재진의 요청에도 끝내 묵묵부답했다. 내 자신을 반성했는데 남들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냐는 의미인 것 같았다. 65일의 고행 순례가 그들을 그렇듯 '겸허'하게 만든 것이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