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피라이터 정승혜씨(38·씨네월드 기획제작이사)가 매주 금요일 동아일보 C섹션 예감 프런트에 연재해온 ‘정승혜의 무비 카툰’을 모아 책 ‘정승혜의 카툰극장’(생각의 나무)으로 펴냈다.
‘무비 카툰’은 2001년 10월 첫 선을 보인 이래 영화와 카피와 그림이 만나는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 칼럼으로 화제가 됐다. 개봉 영화를 단순하고 과감하게 패러디하고 재치있는 카피를 더해 영화의 느낌을 명료하게 전달해준다. 이 책에는 그간 연재해온 그림과 카피 70편이 ‘연인관(館)’ ‘여성관’ ‘남성관’ ‘오락관’ ‘가족관’ 등 5개관에 나뉘어 실렸다.
영화를 보면서 자유롭게 피어나는 상상을 글로 재치있게 압축해낸 카피와 짤막한 글들을 보다보면 속으로 ‘맞아, 맞아’하면서 낄낄 웃게 된다. ‘색즉시공’ 편에서 ‘알면서…속아주마’라는 카피 아래 실린 글은 이랬다.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남자들의 작업 멘트!
1. 손만 잡고 잘게, 오빠 못 믿니?
2. 막차가 끊겼댄다! 어떡하냐?
3. 취하네. 지금 불면 음주 걸리겠는데….
4. 당일치기로 충분한 거리야.
5. 택시 없어. 쉬었다가 와서 잡자
알면서도 넘어가주는 여자들의 응답 멘트!
“약속 꼭 지켜줄꺼지?”
정 이사는 “카피와 본문의 글을 쓸 때 심사숙고하지 않고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자유롭게 쓰는 편”이라고 한다. 소재는 늘 눈과 귀를 열어두고 다양한 곳에서 얻어온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쓸 때는 극장에서 직접 들은 모자간의 대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선생 김봉두’는 개그 콘서트를 패러디했다.
체험담도 좋은 소재여서 ‘클래식’ 편에서는 그가 처음으로 본 성인영화, 처음 들은 음악방송, 처음 좋아한 배우 등을 소개하다 “잊지 못할 첫사랑 ‘그 녀석’까지 당신이 기억하는 ‘처음’들을 돌아보세요”하고 권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중요한 소재는 카툰을 그리고 카피를 쓰기 전에 꼭 챙겨보는 영화 그 자체다. 8800원.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