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요즘 경제학원론을 읽고 있다.
학창 시절 처음 읽고 10년쯤 전에 다시 읽었으니 이번이 세 번째다. 교과서를 읽으면서 원칙이 왜 중요한지 새삼 느끼고 있다.
경제학원론은 꽤 두꺼운 분량이지만 가격을 안정시키는 방법은 딱 두 가지만 제시하고 있다. 수요를 줄이거나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그 외에는 없다. 대신 두 가지 외의 다른 방식(물론 정부 규제다)을 쓰면 가격안정효과는 별로 없는 반면 부작용이 크다고 상세히 가르치고 있다.
수요와 공급.
경제를 논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어찌나 중요하든지 “앵무새도 ‘수요와 공급’이라는 말만 할 줄 알면 경제학자가 된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뜬금없이 수급 얘기를 꺼낸 것은 정부가 내놓은 ‘5·23 주택가격 안정대책’ 때문이다. 대책의 주요 내용을 나열해보자. △투기과열지구 확대 지정 △주상복합아파트 규제 강화 △조합아파트 분양권 규제 △재건축 분양시기 조정 △재건축 안정진단 강화 △떴다방 단속 강화 △투기지역지정 빈도 확대 △부동산 보유과세 강화 △주택담보대출비율 인하.
대책 중에 장기수급에 영향을 줄 만한 내용은 ‘보유과세 강화’ 정도다.
나머지는 대개 거래를 제한하고 투기꾼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가격은 오르되 좀 천천히 오르며 ‘전문투기꾼이 아닌 다른 사람’이 차익(差益)을 취하도록 하는 정책이다. 이런 대책으로는 집값을 잡기 힘들다.
아예 거꾸로 가는 것도 있다. 재건축 억제, 주상복합아파트 억제 등은 공급을 줄이게 된다. 요약하면 정부가 마련한 대책은 교과서가 하지 말라고 말리는 정책이거나, 반대로 가는 내용이다.
이에 앞서 5월 중순 한국은행은 콜금리를 낮췄다. 잠깐 금리 얘기를 해보자.
본보가 작년초 부동산중개업자와 부동산 전문가 159명에게 물었다.
‘부동산 시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응답자의 34%가 ‘금리’를 최대 변수로 지목했다. 전세난, 새 아파트 분양가, 선거 등은 뒷전이었다. 금리가 떨어지고 돈이 풀리면 부동산으로 돈이 흐르기 마련이다. 금리정책은 집값을 자극하는 직격탄이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침체한 경기를 살려보려고 돈을 푼 당국의 애타는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 금리가 높아 투자가 안 되고 있나? 고삐 풀린 돈이 부동산으로 흐르리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 아닌가?
경제당국자들이여, 부디 정책을 펴려면 ‘복잡하고 기묘한 방법’을 어지러이 펼치려 하지 말고 교과서가 가르치는 쉽고 간단한 원리에 의존하시라. 집값뿐 아니라 모든 정책이 다 그렇다. 외환위기도 갖은 편법으로 신기한 재주를 부리며 원칙을 무시하다 만난 것 아닌가. 1인당 소득 1만달러 시대다. 한국의 경제정책도 이제 원칙에 충실할 때가 됐다.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말했다. “위기 후 잠깐 겸허한 모습을 보이던 관료들이 지나치게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과거와 같은 전횡과 독선을 되풀이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허승호 경제부차장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