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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방송]개그콘서트 '성공의 경영학'

입력 | 2003-06-02 17:47:00


《“천한 것들….”

“이 대리, 방금 나한테 뭐라 그랬어?”

“부장님 ‘개콘’ 안 보세요?”

김 부장은 그 주 일요일 밤, 습관적으로 9시 뉴스를 틀었다가 KBS 2TV로 채널을 돌렸다.

KBS 2TV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개콘)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1999년 9월 공연형 코미디 프로라는 다소 낯선 형식으로 출발한 이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생활양식까지 바꿔놓고 있다.

개콘의 성공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성공 뒤에 숨겨진 세심한 경영학적 장치들을 짚어봤다.》


○경쟁과 개방성

수많은 코미디 프로그램 가운데 개콘이 인기를 끌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강영훈 책임 PD의 답은 ‘경쟁논리와 개방성’.

개콘에 나가기 위해 코미디언들은 치열한 내부 경쟁을 거치지만 그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매주 월요일 녹화가 끝나면 사흘 정도 각자 아이디어를 내고 연습을 해서 금요일 분장실에 모여 리허설을 한다. 말이 리허설이지 실은 오디션이다. 잘 나가는 코너도 오디션을 통과하지 못하면 무대에 서지 못한다. 작가의 입김이 셌던 기존 코미디 프로그램과 다르다. 개콘 출연자들은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야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중압감을 늘 갖고 있다.

리허설이 오디션 역할을 하다 보니 검증을 거친 제품만 시장에 나간다.

리허설은 경쟁 방송사에도 열려 있다. ‘미션 임파서블’의 윤성오와 최국, ‘양배추와 낙지의 생활체조’에 출연하는 조세호와 윤석주는 다른 방송사 소속이면서 개콘 무대에 오른다.

강 PD는 “코미디언들에게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주는 게 비결”이라고 소개했다.

아이디어를 만드는 과정도 열려 있다. 정해진 영역이란 없다. ‘갈갈이 삼형제’의 내용에 대해 ‘유치개그’ 팀이 조언하고, ‘우격다짐’의 이정수는 ‘봉숭아학당’의 박미선에게서 코치를 받는다. 품질을 높이기 위해 ‘경쟁 코너’ 출연자의 아이디어를 서슴지 않고 수용한다. 혁신(innovation)을 유도하기 위해 역할을 획일적으로 정해놓지 않은 것이다.

올해 초 심현섭 강성범 김대희 등 핵심 자원이 한꺼번에 떠났을 때 제작진은 크게 떨지 않았다. 이미 ‘부품업체’를 다원화해 놓고 있었기 때문에 뜻밖의 변동성에 대해 큰 충격 없이 대처할 수 있었던 것. 수십명의 신인 코미디언들이 앞 다퉈 오디션을 요청했고 시청자들은 “더 재미있어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잠시 주춤했던 시청률은 출연진 교체 이후 오히려 높아졌다.

○현장이 함께 있다

매주 월요일 녹화 현장에서 관객은 연기자들의 땀방울까지 느낀다. 뒤집어보면 연기자들도 자신의 몸짓, 표정, 말 하나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개콘 현장의 관객들은 기업으로 치면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조사하기 위해 마련되는 일종의 ‘안테나 숍’이다. ‘경영진’과 ‘직원’이 매주 한 차례 상품에 대한 고객의 구체적인 반응을 일일이 체크하는 셈. 시사적인 내용이 호응을 얻으면 다음주 제작분에 시사성을 높인다. 품질관리(TQM)에서 나오는 ‘PDCA(Plan-Do-Check & Act)’ 사이클이 1주일 단위로 계속 돌아가는 것이다.

실시간 반응 조사는 고객의 수요와 반응에 맞춰 생산량을 결정하는 ‘유연 생산’으로 이어진다. ‘우격다짐’ 코너의 개그맨 이정수는 관객이 재미있어 하면 “분위기 좋으니 하나 더 해주지” 하는 식으로 시간을 늘리고 시큰둥하면 “분위기 다운되면 다시 돌아온다”며 일찍 끝내버린다.

○브랜드 ‘개콘’

방송 4년째, 개콘의 형식은 이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개콘 이후 등장한 유사한 코미디 프로그램들은 아류라는 평가를 좀처럼 벗지 못하고 있다.

방송시간(일요일 오후 9시)의 선택에도 전략적인 고려가 숨어 있다. 이 시간대 다른 채널에서는 뉴스를 한다. 하루에 한 번은 TV 뉴스를 봐야 직성이 풀리는 시청자라도 주말에는 사정이 다르다. 종일 비슷한 뉴스가 여러 차례 나오기 때문이다.

차라리 뉴스가 아닌 무언가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개콘의 시간대 선택은 소비자 자신도 미처 모르고 있던 욕구를 정교하게 겨냥하고 있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나성엽기자 cpu@donga.com